<송진혁칼럼>나사는 누가 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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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사가 풀렸다는 말이 도처에서 들려온다.감독.관리.점검.확인할 책임을 진 어느 누구라도 제대로 책임을 다 했던들 대구의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대형사고때마다 달밤의 맹세처럼재발방지책이 되풀이 됐지만 막상 재발방지책을 수 행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니 말짱 헛수고다.기합이 빠졌다,나사가 풀어졌다는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여북하면 정부기관이 제대로 할 일을 않은데서 온 「기관재(機關災)」라는 말까지나올까. 요즘 이런 말이 있다.9급은 90%,8급은 80%,7급은 70%… 이런 비율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심각한데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누가 과장되게 지어낸 말이겠지만 서해 페리호 참사를 겪고,성수대교를 겪고,아현동가스폭발을 겪고… 이렇게 겪고,겪어도 교훈을 못얻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이번에 다시 대구참사를 겪고도 또 한번 재발방지를 달밤의 맹세처럼 하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이번에야말로 나사가 왜 풀렸는지 근본 원인을 알아내고 풀린 나사를 죌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공무원만 나무랄 일이 아닌지 모른다.그보다는공무원을 신명나게 하고 움직이도록 만들지 못하는 국정운영이 더문제다. 정부에도 우수한 인물이 많다.여당에도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 수두룩하다.가스안전관리 정도의 일이라면 우수한 인물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그런데 우수한 인물이 많이 있는데도 그 안전관리가 왜 안되는가.문제는 사람이 많아도 그들 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데 있는 것 같다.이홍구(李洪九)총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우수한 인물이지만 그가 총리라는 중직(重職)에있으면서도 그의 탁견(卓見)을 국민이 들을 기회가 별로 없고,그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지도 의문이다.기 라성같은 장관들,여당중진들이 있어도 그들이 국정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고,무슨재량과 책임을 갖고 일하는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말하자면지금과 같은 권력운영구조에서는 많은 공직자들이 실력발휘할 기회나 무대가 없는 것 같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반 관료들의 경우 출세하고 승진할 길이 보이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냅다 뛰게 마련인데 요즘은 어떻게 해야 출세하고 승진할지 모르게 돼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과거 박정희(朴正熙)시대에는 증산.수출.건설이란 국정목표가 뚜렷하고 하다 못해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있었다.공무원들은 이런 목표를 향해 남보다 열심히 뛰고,남보다 나은 실적을 올리면 승진.영전한다는 믿음이있었다.지금도 세계화라는 국정목표가 있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 공무원을 뛰게할 구체적 지침 은 되지 못하고 있다.자기 장관이,대통령이 뭘 좋아 하는지,어떻게 해야 출세를 할 수 있는지 너무나 불분명하다.뛰는 사람만 「곰바우」가 된다면 누가 뛰겠는가.
또 이런 문제도 있는 것 같다.상부와 하부,중앙과 현장간에 연결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밑에서 잘하는지 못하는지,누가잘 하고 누가 못 하는지를 상부에서 모르면 밑에서 열심히 하지않게 되는 것은 뻔하다.지시만 내려보내서는 될 일이 아니다.위에서 보고 있다,확인하고 있다고 현장에서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시스템이 돼야 하는 것이다.그토록 지시를 했는데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대구가스가 폭발하는 것은 현장의 이행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전에는 안기부가 상.하,중앙과 현장간의 연결구실을 어느 정도 했는데 안기부가 못하게 한건 좋지만 다른 기관이라도 이런 기능은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안전이 중요하다면 안전을 국정운영의 중요개념으로 부각시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사고가 나야 안전을 강조하는 것으로끝내면 안전은 확보되지 않는다.안전을 잘 지키면 불러 칭찬하고,표창하고,승진시켜야 한다.안전을 소홀히 하면 불호령을 내리고징계해야 한다.
그래서 안전이 공무원의 희노애락을 좌우하는 중요기준이 되도록해야 하는 것이다.안전공법(工法)에 관심을 표하고 정책지원을 하고 고위층이 직접 현장에도 가봐야 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에 인물은 많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다.나사가 풀렸으면 조여야 한다.누가 구슬을 꿰고 나사를 죌 것인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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