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경기 안 좋다는데 주가 왜 오르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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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경제 성적이 나쁜데도 주가는 오르는 거예요. 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종합주가지수가 얼마 전(3월 4일) 905.38을 기록해 22개월여 만에 900선을 넘었어요. 지난해 3월 17일 지수가 515.24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76%나 높아진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투자자들이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주식을 많이 사들였기 때문이에요. 외국인들은 올해 7조원을 순매수한 것을 포함,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모두 21조2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산 금액에서 판 금액을 뺀 수치) 했어요.

그런데 의문이 또 생겨요. 외국인과 달리 개인투자자와 은행.보험.증권사를 통칭하는 기관투자자 등 내국인들은 외국인이 산 금액보다 6000억원이나 더 많은 21조8000천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어요. 주식을 판 금액이 산 금액보다 더 많았는데 어떻게 지수는 오히려 두배 가까이나 올랐느냐는 거지요.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예컨대 고등학교 1학년인 A군의 내신성적은 영어가 5단위, 미술이 1단위로 평가된다고 해보죠. 그러면 영어의 10점은 미술 10점의 다섯배의 가치가 있겠죠. 따라서 A군은 내신을 올리기 위해선 미술보다 영어 성적을 올리는 데 힘을 기울일 겁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주식수×주가)은 5일 현재 84조원인데, 단순 계산으론 삼성전자 주가가 10% 오른 것은 시가총액 8조4000억원인 회사의 주가가 100% 오른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주식시장에선 삼성전자처럼 '힘이 센' 종목을 시가총액 상위종목 또는 우량주(블루칩)라고 부릅니다. 지난 1년간 외국인들이 이런 종목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에 판 금액이 산 금액보다 많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꾸준히 상승한 거죠.

이번엔 경기가 안 좋은데도 외국인들이 주식을 많이 산 이유를 알아볼 차례예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경기가 지난해 3분기(7~9월) 이후부터 서서히 좋아지고 있지요. 특히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면 미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중국.대만 등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살림살이가 좋아지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매월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다만 이처럼 수출이 잘되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경기가 안 좋다'고 하는 것은 수출도 잘되는 회사만 잘되고, 국내 소비와 투자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선진국에서 주식에 투자할 돈이 넉넉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좋아지면서 주가도 덩달아 오르자 주식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모인 돈은 자기네 나라의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펀드를 만들어 전 세계 증시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앞으로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 등에 따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주가가 많이 오를 것 같자 외국인들은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 비중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거지요. 실제로 외국인들은 지난해부터 한국 기업들의 주식만 많이 산 것이 아니라 일본.중국.대만.홍콩의 주식도 많이 샀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외국인들과 달리 국내 투자자들은 왜 주식을 팔았는지 알아봐야죠. 예전에 주가가 많이 오를 때 이런 현상이 빚어지곤 했어요. 주가 수준이 낮을 때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며 지수가 상승합니다.

지수가 800선 전후까지 오르면 국내투자자, 특히 여러분의 부모님 같은 개인투자자들이 은행 적금을 깨고, 심지어 돈을 빌려 주식투자에 나섭니다. 그렇게 지수가 900선이나 1000선을 넘을 때쯤이면 외국인들이 대거 주식을 팔고 한국을 떠나고 결국 국내투자자들은 주식투자로 패가망신하는 일이 빚어지곤 했지요. 그런 '아픈 기억' 때문에 지수가 오르면 오를수록 개인투자자들은 증시를 자꾸 떠나게 되는 겁니다.

은행.증권.투자신탁.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는 왜 주식을 팔았을까요. 외국인들처럼 국내 주식시장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주식을 살 '실탄'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특히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투자신탁 회사는 개인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주식을 사는데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파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맡긴 돈을 자꾸 찾아가자 실제로 투자할 돈이 얼마 남지 않게 된 거죠.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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