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건설안전 규제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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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또 하나의 대형 안전사고를 맞았다.반복되는 사고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국가의 관리를 맡긴 위정자에게 분노를 느끼고,또 어떤 이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매일 지 하철 공사장을 지나가야 하고 다리를 건너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기도한다. 아직도 대구 사고의 정확한 원인 추정에 약간의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 공사장에 인접한 백화점 신축공사장에서의 무분별한 지하 천공(穿孔)작업이 가스 누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렇다면 결국 이 사고도 안전의기본 규칙을 지키지 않은데서 발생한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반복돼 온 대형 참사의 공통점이 안전에 관한 기본 규칙을 지키지 않은데서 발생하였다면 과연 이 규칙들은 왜 그렇게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일까.안전관리에서 사고방지의 접근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세가지 개념적인 대책이 동원될 수 있다고 한다.기술적인 대책,교육적인 대책,규제적인 대책이 그것이다.다시말하면 사고방지를 위한 기술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교육을 통해 안전의식을 고취해 자발적인 안전대책을 생활화하며 그래도 부족할경우에는 강제적으로라도 안전 수칙(守 則)을 정해 이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안전관리에 대한 접근 방법은 지나치게 규제적인 대책 위주인 반면 기술적인 대책과 교육적인 대책에는 매우 소홀하거나 형식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규제 위주의 안전관리는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규제가 해제되면 곧 그 효력이 정지되고 마는 특성이 있다.우리의 단속문화가 바로 그것을 잘 말해 준다.술집의 심야영업 단속,음주운전 단속,과속운전 단속 등이 바로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 다.
사회의 안전관리가 규제 위주로 나간다면 국가 체계는 경찰국가의 형태가 알맞을 것이다.그렇지 않고는 모든 공사현장에서 규칙의 이행여부를 단속에 의해 규제할 수 없을 것이며,이럴 경우 대구에서와 같은 참사는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가능 성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음주운전을 단속해도 단속지점이 아닌 곳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준법(遵法)운행」이버스운전사 노동조합의 투쟁방법으로 시위에 활용되는 국가에서 규제에 의한 안전규칙의 준수가 제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마 너무도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체제는 규칙을 지키면 오히려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기 보다는 편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편법이 통하는 사회는 정말 치유하기 어렵다.왜냐하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해결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가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며,이를 위해 규제적인 대책 보다는 기술적인 대책과 교육적인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직업관이 투철한 기술자의 양성과 필요한 기술개발에과감히 투자하고,필요한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는 학교와 가정의 교육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대형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정부의 규제적인 대책마련에 대한 다짐을 보면서 차라리 단기적인 대응으로 1~2년 안에 인재없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면 이제는 차라리 개별공직자의 임기안에 인재를 없애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감으로써 10년후부터의 인재를없애는데 주력하는 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는 한 꼬리를 무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신문지면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주대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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