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인 내 딸이 생각나서 … 절도범 취직 시켜준 형사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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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서경찰서 백기종(55)경위는 28일 절도혐의자를 조사하다 큰딸 얼굴을 떠올렸다. 이날 조사받은 편모(29·여)씨는 큰딸과 비슷한 나이였다. 편씨는 강남구 일원동 모 종합병원 병리과 검사실 앞에 놓인 모금함에서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1만원짜리 지폐 2장을 꺼낸 혐의(절도)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현장을 지켜보던 보안요원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취조를 시작하자 편씨는 눈물부터 흘렸다. 그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출해 10년 동안 변변한 잠자리·일자리도 없이 떠돌았다고 털어놓았다. 편씨는 2년 전 6년 동안 일하던 액세서리 가게의 배달일을 그만둔 뒤엔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그때그때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했다. 밤에는 고시원·PC방·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새우잠을 잤다. 편씨는 “고정된 주소지가 없고 휴대전화도 없어 취직이 잘 안 됐다”며 “돈도 없고 너무 힘들어 그랬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백 경위는 편씨를 보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큰딸이 떠올랐다. 한창 부모 사랑을 받을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방황해 온 편씨가 안쓰러웠다. 게다가 편씨는 전과가 없는 초범이었다. 처벌보다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서울 강남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친구 윤모(61)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윤씨는 “숙식과 월급 100만원을 주겠다”며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백 경위는 “아직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며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를 보면 다 딸처럼 느껴지는 게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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