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지난달 7일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변화’를 강조한 오바마에 대해 “킹 목사의 꿈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 의해 실현됐다”고 공격했다. 흑백 평등이 킹 목사의 꿈이었다면 그걸 민권법(흑인에 대한 교육·고용 차별 금지)이란 입법을 통해 현실화한 건 1964년의 존슨 대통령이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힐러리는 슬로건보다는 경험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그 말을 했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를 킹 목사와 오바마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이해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경우 힐러리가 존 F 케네디 대통령보다 존슨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여겨 불쾌해 했고, 이것이 오바마 지지의 한 동기가 됐다.
그렇다면 킹 목사와 존슨 전 대통령은 어떤 관계였을까. 조셉 칼리파노(76·사진) 컬럼비아대 ‘약물 중독 및 남용 연구센터’ 소장은 존슨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국내 문제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는 27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훌륭한 비전을 가진 목사와 노련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본 정치인이 합작해 (흑백 차별 철폐라는) 사회혁명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위대한 사람이 잘 협력했기 때문에 미국은 인종 차별의 나라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힐러리의 발언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 했다. 다음은 칼리파노 소장이 전하는 당시 상황.
“(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며칠이 지난 뒤 킹 목사는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에게 민권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라고 압박했다. 킹은 (차별의 뿌리가 깊은) 남부와 싸우기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존슨도 킹의 꿈과 의지를 잘 읽었다. 64년의 대선도 염두에 뒀다. 킹도 그런 존슨을 돕겠다고 했다.
존슨은 대선 전 민권법 제정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남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상원 표결 때 뇌종양으로 말도 할 수 없었던 캘리포니아 출신 클레어 엥글 의원까지 동원했다. 엥글은 휠체어에 탄 채 눈(eye)을 가리켜 찬성(aye)의 뜻을 표시했다. 존슨은 민권법에 서명한 직후 보좌관 빌 모이여스에게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제 당신이나 내 남은 생애 동안 남부는 공화당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존슨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조지아 등 남부의 핵심 5개 주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존슨은 남부에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65년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투표법 제정을 추진했다. 킹이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흑인 시위를 주도하는 걸 존슨은 장려했다. 주 경찰이 시위대에 잔인한 폭행을 가했다는 보고를 받고 존슨은 앨라배마 주지사인 조지 왈라스를 욕했다. 그런 뒤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투표법 제정을 강조했고, 결국 입법에 성공했다. 존슨은 104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하는 법에 서명한 그 장소에서 투표법에 서명했다 .”
워싱턴=이상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