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새 정부, 부동산 정책 기준도 리모델링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재계 주요 인사들. 왼쪽 사진 좌로부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 사람 건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오른쪽 사진의 이건희 삼성 회장은 다른 줄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다른 사람 집은 몰라도 내 집값만은 올랐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양모(61·서울 서초구)씨는 자신의 집값이 내리기를 바란다. 공시지가 7억원짜리 아파트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기가 벅차서다. 양씨는 “퇴직금 빼 먹으면서 사는데 지난해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로 300만원을 냈다”고 말했다. 양씨는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받으려고 역모기지(주택연금)도 신청했다. 그러나 6억원 초과 주택은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 가끔 여행이라도 다니며 사는 게 꿈인데 비싼 집에 사는 게 오히려 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의 오래된 기준이 높아진 생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고가 주택으로 분류돼 세금이 중과세되는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또 집을 장만할 때 각종 혜택을 주는 기준을 ‘85㎡ 이하’로 묶어놓은 지도 30년이 다 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런 규제와 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 .

◇높아진 집값=공시지가 6억원 초과 주택을 고가 주택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1999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2만 가구도 안 됐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집값이 오르면서 지난해 50만 가구를 넘어섰다. 일단 6억원이 넘으면 늘어나는 부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된다. 집이 한 채뿐이어도 양도세를 내야 한다. 역모기지도 받을 수 없고,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도 제한을 받는다.

소득이 없는 노인층이 특히 문제다. 조세연구원은 25일 “현재 소득이 많다는 것과 비싼 집에 사는 것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분석했다. 평생 번 돈을 집 사는 데 다 쓴 사람도 있고, 월급은 별로 안 늘었는데 살다 보니 집값이 껑충 뛴 가구도 있어서다. 노영훈 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는 편협한 분배론에 집착해 고가 주택 기준을 고집하고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 했다”며 “고가 주택 보유자를 투기꾼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수요=주택 수요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이왕이면 큰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1인당 주거면적은 2000년 20㎡에서 2005년 23㎡로 늘었다. 2012년 27㎡까지 늘 것으로 건설교통부는 전망한다. 가족이 네 명만 돼도 85㎡는 살기에 비좁은 집이 된 셈이다.

그러나 85㎡ 기준은 변하지 않고 있다. 전용면적이 85㎡를 넘으면 싼 이자로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 대표적 절세 상품인 장기주택마련저축에도 들수 없다.

시장은 빨리 움직인다. 지난해 주택 건설물량 중 85㎡이하 주택의 비중은 62.5%였다. 2004년 75.7%에 비해 13%포인트 이상 줄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변화는 더디다. 재건축·재개발을 할 때 85㎡ 이하 주택을 60~80% 짓도록 해 수요와 공급이 서로 어긋나게 하고 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는 “더 넓고 좋은 집에 살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집값도 잡을 수 있다”며 “단기적인 집값 안정에 집착해 국민의 삶을 오히려 피곤하게 만드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