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27.한의학에 生藥學접목 李承吉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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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또 하나 내 일생에 가장 혼났던 일이 그 즈음에 생겼습니다.
나는 그때 꽤나 효험있다고 소문난 감기약을 한가지 조제해 팔고있었습니다.어떤 여자 환자가 그것을 복용했는데 그 남편이 찾아와 하는 말이 사흘동안이나 땀이 멈추지 않고 쏟 아져 나오는 바람에 탈진해 곧 죽게 되었다는 것이었어요.그건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때 마침 내 약국에는 다른 손님 하나가 약을 사러 와 있었는데,땀이 안멎을 때는 요 밑에 한의사한테 가서 약을 한첩만 지어 먹으면 된 다고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며칠 후에 그 남편이 일부러 찾아와 부인의 땀이 그쳤다는 걸 알려 주었습니다.그동안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지냈지요.』 이런 시기 李씨의 선친이 자기 친구인 박성수(朴盛洙)씨를 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는 것은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고 하겠다.朴씨는평양의전을 졸업한 양의였고 독학으로 공부해 한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한의기도 했다.그는 5.16군사혁명 정부가 기준미달을 이유로 폐교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없어진,당시에 있던 유일한 한의학 교육기관이던 동양한의과대학에 교수로 재직했던 사람이었다.학교 교단을 잃은 그는 그때 자기의 한의술을 전승해줄 후보자로 기성약사와 한의사를 마음에 정하고는 오히려 그 대상자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李씨의 말.
『내 평생에 박성수선생을 만난 것만큼 큰 행운은 없었습니다.
그는 한의학 가운데서도 중국의 남방계 의학을 따르는 분이었습니다.후한(後漢)말 장중경(張仲景)이란 사람이 쓴 상한론(傷寒論)10권을 바탕으로 계승 발전돼온 의학입니다.이 계 통의 의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은 지금부터 약 3백년전의 일본인 의사 요시마스(吉益東洞)입니다.그는 이 의학을 고방(古方)이라고 불렀습니다.일본에서도 요시마스의 고방은 처음에는 심한 반발에 부닥쳤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정통 한 방의학(漢方醫學)으로정착돼 있습니다.朴선생은 자기 생각으로는 의학은 과학이므로 남의 것이라도 효력이 있으면 받아들여야지 민족주의를 내세워 거부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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