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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바라는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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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미국과의 관계 재구축에 있다고 본다. 물론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차기 정권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 한국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새 정권의 탄생을 계기로 미국의 현 정권과 굳건한 관계를 구축할 것을 권고한다. 민주당 정권이 되든, 공화당 정권이 되든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한·미 관계에 공백기간이 있어서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이 후쿠다 총리를 초청한 것은 한·일 관계의 장래를 볼 때 매우 중요하다. 한·일 양국 사이의 폭발적인 인적 교류를 보더라도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실무적 측면에서는 작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이를 함께 해결해 가면서 이웃나라로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연대감이 흔들리지 않도록 관계를 깊게 해야 한다.

다만 일본은 국내정치가 유동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한국에서 볼 때는 일본과의 관계 강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기 쉽다. 예를 들면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小淵三) 총리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오부치 총리가 2000년 타계하고 뒤를 이어 모리 요시로(森喜朗)·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정권이 탄생하면서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됐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후쿠다 정권과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후쿠다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곧바로 치러야 하는 정치적 위기를 피하게 됐다는 점이다. 내년 여름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 과반수 체제가 무너질지 몰라도 후쿠다 정권이 끝날 가능성은 없다. 어떻게든 여당이 과반수를 유지하면 후쿠다 정권은 존속된다.

둘째, 후쿠다 정권이 단명하다고 해도 이 정권은 한·일 관계를 성숙시키는 것만으로도 득을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정권의 공과(功過)를 논할 때 일본 내부에서의 ‘공’에 대한 평가는 높지만, 아시아정책·근린외교에 대해서는 ‘과’의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일본에선 한·중과의 관계가 우선순위 높은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일 관계를 성숙시켜 나가면 두 나라는 양자 관계를 넘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미국의 건설적 관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구도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일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에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계속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국제협조 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종용해 나가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미 관계를 중시하고, 한·일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한국의 새 정권이 이런 방향성을 보여주면 세계 전체는 물론 아시아 각국, 특히 북한에 대해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다나카 아키히코 일본 도쿄대 교수
정리=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