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그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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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경미(1959~) '그렇다' 전문

아 참, 나는 참새가 아니지
날아가다가 뚝!
허리가 부러진다
(가끔씩 내겐 사람다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다)

그래 참, 나는, 참
사람도 아니지
마저 부러진다!
(상처를 실컷 주고 나니 뜻밖에 후련하다니! 차마 이 비결로 사람들이 여태 행복했었을까, 차마!)



새는 날아간다. 날면서 생각을 하고 날면서 사냥을 하고 날면서 사랑을 한다. 날지 못하는 것은 새가 아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새를 꿈꾸었다. 끝없이 날아오르기를 꿈꾸었고 끝없이 넓은 대륙으로 날아가 그 대륙의 주인이 되기를 꿈꾸었다. 새가 아니면서 새의 흉내를 낸 시간들. 인간 역사의 다른 이름이다. 슬프게도 새가 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인간들은 언젠가 날아가다 뚝, 떨어진다.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는 날다가 추락한 인간들의 번뜩이는 욕망의 비늘 자국이다. 해가 뜨고, 우리들은 또 힘겹게 날아오른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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