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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한달] 전봇대 두 개 뽑고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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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불산단 입주업체의 한 직원이 15일 도로 쪽에서 인도 쪽으로 2m 옮겨진 전봇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 직원이 서 있던 곳에 원래 전봇대가 있었다. [영암=프리랜서 오종찬]

“뭔 말을 더 하겠어요. 높은 분들이 다녀갔으니 언젠간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

15일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선박 블록 제조업체인 ㈜유일 유인숙(여) 대표는 지쳤다는 표정이었다. 2003년 초부터 블록을 제작해 온 그는 그동안 수없이 운송 제약에 따른 불편을 호소해 왔다.

지난달 1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불산단의 전봇대’를 거론해 “이제 제대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산업자원부와 전남도 관계관들이 잇따라 방문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관심을 표명해 확 달라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한전이 전봇대 두 개를 뽑아 낸 게 사실상 전부였다. 대상중공업㈜ 한경수 팀장은 “이 당선인이 언급한 교차로에서 대형 블록을 실은 트레일러들이 곡예운전을 하는 수고를 덜기는 했다”고 전했다.

대명특수크레인 임채형 부장은 “요즘도 블록 하나를 옮기는 데 1~2시간씩 걸려 매일 전쟁을 치르듯 실어 나른다”고 털어놨다. 일부 업체는 블록들을 나눠 실어낸 뒤 부두에서 접합하는 일을 반복한다. 입주업체들은 왕복 8차로 대불로 위에 중앙분리대 용도로 설치된 화단을 야광 차선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운송이 가능한 블록의 폭은 최대 26m. 화단을 없애면 32m까지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영암군과 경찰은 “대불로에는 하루 4만 대의 차량이 통행하고 있어 중앙분리대 교체는 안전문제를 고려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인숙 대표는 “전봇대 한두 개를 뽑아 버린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며 “대불산단이 지난해 말 조선산업 클러스터 단지로 지정된 만큼 대폭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리모델링 필요”=왕복 4차로를 끼고 있는 태진엔지니어링 등 네 곳은 최근 2900만원의 비용을 분담해 전신주 6개를 2m 뒤 인도 쪽으로 옮겼다. 태진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블록이 대형화하는 추세인데 도로 여건이 맞지 않아 업체들이 나서 전신주를 이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암군과 한전은 상반기 중 20억원을 들여 53곳의 도로를 가로지르는 전선 4.3㎞를 지중화(地中化)할 계획이다. 공장 진출입로를 횡단하는 전력선 지중화의 경우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전의 방침이다. 업체들이 비용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영암군은 33억원을 들여 나불교 등 다리 네 곳의 하중 보강공사를 벌이기로 했다. 곳곳이 파인 도로에 덧씌우기 포장공사도 할 예정이다. 도로 전면 개·보수비 477억원을 포함해 대불산단 ‘리모델링 사업비’로 982억원의 지원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블록제조업체인 ㈜새한테크 유한준 이사는 “입주업체들과 관련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게 그나마 성과”라며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천창환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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