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민우의 몸이 흔들리면서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쟁아…자냐!』 민우는 얼핏 눈을 떴으나 여전히 눈앞은 캄캄했다.이게 죽음인가? 죽음이란 결국 암흑이란 말인가.그 암흑속으로 음침한 소리가 젖어 왔다.
『죽이기도 전에 죽는 놈이 어딨냐? 그 간덩이로 어떻게 바람을 피웠냐!』 민우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현실이었다.눈앞은여전히 깜깜했다.그러나 손목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민우가 잠든 사이에 채신은 민우의 손목을 느슨하게 늦춰놓은 것 같았다.
『네놈이 미리 죽는 바람에 내 수고가 덜어져 다음 시상을 좀잡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그래서 네놈이 깨기만 기다렸다.깬 다음에 다시 죽이려고….』 『뭐라고…미친년!』 다시 민우의 목가로 차가운 것이 스쳐갔다.
『년,년 하지 말라 그랬지!』 채신이 잠시 씨근덕거리다 다시말을 이었다.
『나는 위대한 존재라 열등하게 모욕받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네놈하고 섹스할 때도 항상 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채신은 민우와 섹스할 때 항상 위에 있기를 좋아했다.
다소 남성적인 면이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성전환 수술한 놈일 줄이야….
『이제 정신을 차렸냐.』 『아직 덜 차렸다.』 『빨리 정신 차려라.그리고 나를 위해 공포에 떨면서 죽어라.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공포를 봐야 다음 시상이 나올 것 같다.』 『그 연작시 때문에 고민하는 거냐?』 『그래,신의 영광을 위한 멋진 연작시를 구상중이었는데 지금 못난 네놈을 만나 콱 막혀버렸다.
』 『그래,시 한수 못 지어서 사람을 죽이냐?』 『어쭈,이놈이…그러면 니가 한 번 지어봐라! 내 마음에 흡족하게 지으면 네놈을 살려주마!』 『그만두겠다.너같은 년놈을 위해 시를 짓느니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다.』 『야,그러지 말고 한편만 지어봐라!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 같냐?』 『싫대도….』 『딱 한편만…그 다음은 내가 다른 놈들 죽이면서 완성하마! 니놈에게서시가 안나오면 난 두고두고 그 생각만 할거다.』 『싫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