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리고 네가 의사라서 궁금해 할까봐 얘기해 주는 건데 나는성전환 수술을 해서 인공 성기를 갖고 있다.그래서 그곳으로는 아무리 박아도 에이즈가 감염되지 않는다.알겠냐,이 바람둥이야!』 『내가 바람둥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 채신이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너만 모르지 세상 여자들은 다 안다.세상 여자들이 너한테 먹힌 줄 아냐.
다 너를 먹었지.생각해 봐라.어떤 여자가 너의 그 맹한 수법에 당하겠느냐.』 민우는 갑자기 부끄럽고 화가 났다.이건 바람둥이로서 최대의 모욕이다.아까 몸을 구석구석 닦을 때 발로 힘껏 차버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그래도 한가닥 희망이라도 기대하고 얌전하게 닦인 건데….
『너희들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다 바람둥이들이냐.유혹하는데 안넘어가는 놈이 없으니….
환자는 안보고 환자 먹을 궁리만 하냐? 나는 네놈들 몇 명을죽였지만 다 정당방위다.그놈들이 내 예쁜 얼굴과 잘 빠진 몸매를 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내가 그 놈들을 잡아 먹은 거다.』 『빨리 죽여라! 더이상 너같은 미친 년하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세상에 나같은 정신과 의사는 나 하나뿐이다.』 『내가 만난정신과 의사들은 다 그랬다.주미리만 빼고….그년은 어떻게 멋진남자한테 관심도 없냐.』 『남자 행세도 했냐?』 『그야 물론이지.나는 태어날 때 부터 남자였으니까….』 차가운 감촉이 민우의 목을 감았다.
『이제 더이상 얘기할 것은 없겠지.』 민우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죽음,죽음 했지만 실제로 죽음을 맞게 되니 감당이 안됐다.흐려지는 정신 위로 채신의 시읊는 목소리가 들렸다.
『쓸쓸한 저녁 왠지 가슴이 스산해 지며 뭔지 모르는 슬픔과 허무함이 가슴을 저리게 차오는 순간이 있다.뚜렷이 슬프고 허무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끔씩 나를 휩싸고 도는 이 아픔은쉽게 가시지가 않는다….기나긴 잊음의 시간은 지 나고 마주 보아도 느낄 수 없는 운명은 메마른 영혼의 숲속에서 알모르는 감상의 늪으로 날 인도한다.내 손바닥을 스쳐가는 영혼의 뿌리는 뒤늦게 움켜 쥐는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가슴속은 갑자기 스산해지며 바닥이 없는 공허감 속으로 빠져들 어간다….암흑같이 휩싸고도는 이 진한 아쉬움과 기다림,슬픔과 공허! 이 감상의 늪에서나를 건져줄 사람은 그 누구인가.이 외로움으로부터 나를 구해줄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채신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높아가면서민우는 의식을 잃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