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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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형렬(1954~) '처자' 전문

주방 옆 화장실에서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킨다
엄마는 젖이 작아 하는 소리가
가만히 들린다
엄마는 젖이 작아
백열등 켜진 욕실에서 아내는
발가벗었을 것이다
물소리가 쏴아 하다 그치고
아내가 이런다 얘, 너 엄마 젖 만져봐
만져도 돼? 그러엄. 그러고 조용하다
아들이 아내의 젖을 만지는 모양이다
곧장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파 이놈아!
그렇게 아프게 만지면 어떡해!
욕실에 들어가고 싶다
셋이 놀고 싶다
우리가 떠난 먼 훗날에도
아이는 사랑을 기억하겠지



그윽하고…아련하고…평화롭다. 대저, 시가 별 것일 것인가. 어미와 아들이 함께 목욕을 하며 찰박찰박 물 끼얹는 소리를 지척에서 지아비가 듣는다. 시쓰는 지아비, 책읽기에는 관심이 없고 욕실에 들어 셋이 함께 놀고 싶은 마음뿐임에야…. 극락인 듯 그들 언저리에 부용꽃 한송이 피어라.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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