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 스님 서강대서 강의…재미 넘치는 禪수업 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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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현각입니다. 검을 현(玄), 깨달을 각(覺)입니다."

2일 오전 9시30분 서울 서강대 체육관 다용도실. 푸른 눈의 현각(40) 스님이 자기 이름을 칠판, 아니 백판 위에 한자로 또박또박 썼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 '참선과 삶'이 시작됐다. 강의실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책상은 없고 방석만 보인다.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통해 유명해진 그는 뜻밖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거론했다.

"부시 대통령은 제 선배입니다.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정말 머리가 좋은 '놈'입니다. 학생 시절 C학점만 받았지만 졸업이 쉬운 건 아니거든요."(웃음)

그는 '책과 종교'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하느님께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을 꺼낸 건 그런 이유에서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아랍의 엘리트요, 지식인입니다. 엄청난 부자지요. 하지만 뉴욕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일까요." 대답이 없었다. "원자폭탄도, 총도, 마약도 아닙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전쟁 가운데 90%는 그 때문에 일어납니다."

스님은 '겉으로 드러난' 종교를 부인했다. 종교를 믿는 학생들이 있으면 그것을 잠깐 신발장에 넣어두라고 부탁했다. 대신 성당이든, 교회든, 절이든 각자 어디를 다니든 세상에 왔을 때 가져온 책, 즉 마음을 위한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참선과 삶'은 3학점짜리 강의다. 현각 스님은 그간 여러 곳에서 특강을 했으나 공식 학점을 주는 과목은 처음 맡았다. 서강대 측에서 종교 간 대화를 주제로 한 자리를 요청했고, 그도 이 제의를 선뜻 수용했다. 그의 '이름값'을 증명하듯 강의실은 북적댔다.

스님은 재미있는 시간, 프로덕티브(생산적)한 시간을 약속했다. 불교.기독교.이슬람교 구분없이 '참나'를 찾아보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선(禪)이라는 것. 예수회가 세운 가톨릭 계열의 대학에서 한때 신부를 지망했던 미국 엘리트가 선을 강의한다는 사실이 달라진 세상을 웅변하고 있었다.

"생각에 따른 기도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부시도, 빈 라덴도 모두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에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선은 생각이 일어나기 전, 생각이 끊긴 곳의 자기를 찾는 겁니다. 그곳엔 미국도 한국도, 김정일도 노무현도, 불교도 기독교도,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강의는 철저히 체험 중심으로 진행된다. 참선과 토론이 8대 2 비율이다. 평가 방법도 출석 70%, 리포트 30%다. 그는 이를 '열려 있는 마음 100%'로 표현했다.

"요즘 한국 젊은이는 방향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일시적 감정에 좌우됩니다. 그런 학생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 스스로 자신을 찾도록 여기에 왔습니다."

자리가 어지러웠는지 그는 앞으로 학생보다 먼저 나와 청소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던 중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 현재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맡고 있다. 스스로 전생에 한국인이었음을 주장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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