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한 ‘밤과 낮’ 홍상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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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과 낮'으로 제58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홍상수 감독과 주연배우 박은혜·김영호.(왼쪽부터) [AFP=연합]

홍상수(47) 감독의 ‘밤과 낮’이 12일 제58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첫 시사회를 열었다. 올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 영화다.

홍 감독은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이후 ‘강원도의 힘’(98), ‘오 수정!’(2000), ‘생활의 발견’(2002) 등 문제작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의 한 명으로 통한다.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와 ‘극장전’(2005)이 거푸 초청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베를린 영화제에는 지난해 비경쟁 파노라마 부문에 ‘해변의 여인’이 소개됐고, 경쟁 부문은 이번에 처음 초청됐다.

이날 한국에서도 ‘밤과 낮’ 기자 시사회가 열렸다. 난생 처음 대마초를 피웠다가 경찰에 잡혀갈까봐 지레 겁먹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파리의 민박집에 머물게 된 유부남 화가 성남(김영호)의 이야기다. 성남은 겉은 듬직한 체격인데, 속은 소심하다. 배우 김영호는 그간 감독이 즐겨 그려온 속물 근성의 지식인 남성상 중에도 의뭉스럽기로는 가히 압권이라 할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했다. 성남은 매일 밤 서울에 있는 아내(황수정)와 국제전화를 통해 살뜰한 애정을 확인하는 한편, 파리에서 유학 중인 젊은 미술학도 유정(박은혜)에게 슬금슬금 연애감정을 품는다.

제목인 ‘밤과 낮’은 서울과 파리의 시차뿐 아니라 말과 행동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보인다.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겉과 속이 다른 여러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심리적 로드무비라는 점에서는 이제까지 홍상수 영화 세계의 연장이면서도, 전에 보지 못한 결말이 흥미롭다. 성남은 국제전화로 들려오는 아내의 거짓 임신소식에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홍상수 영화의 여느 주인공과 다른 이 같은 선택은 서울에 돌아온 성남이 현실과는 사뭇 다른 꿈을 꾸는 장면과 함께 마무리된다.

이번에도 직접 시나리오를 쓴 홍 감독은 베를린으로 떠나기에 앞서 “처음에는 밤과 낮이라는 시간대로 떨어져 있는 아주 가까운 두 사람 사이의 국제통화를 생각하면서 시작했다”며 “남자의 존재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지금 같은 구성과 형식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남자의 구원이 아내의 거짓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시사회 직후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홍 감독과 주연배우 김영호·박은혜가 참석했다. 홍 감독은 국내외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영어로 답했다. 감독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영화를 구상한 과정을 소개했다. ‘밤과 낮’이라는 제목에 대해 “예전에 뉴욕에서 밤시간에 전화를 걸어 서울에서 낮에 장보고 있던 아내와 통화했을 때의 경험이 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영화는 28일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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