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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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얼마전에 만났던 채신 또한 그러했다.채신도 외로운 미시족으로민우를 찾았는데 그들은 진료실에서 키스와 기본적인 애무를 끝낸후 곧 여관을 찾았다.그녀하고는 이상하게 감각이 잘 맞아 괜스레 내숭이나 실랑이 없이 곧 에덴 동산의 아담 과 이브로 직행할 수 있었다.섹스가 끝난 후 채신은 민우에게 아버지같은 포근한 품을 기대했다.민우는 다시 정신과 의사가 되어 채신의 여러가지 고민들을 충분히 들어주었는데 역시 그녀에게도 깊은 부성 콤플렉스가 있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면서 나가 그녀는 항상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것이다.침대에서 면담을 끝낸 후 민우는 옷을 입으려고 발가벗고 섰다가 문득 스쳐가는 말이 있어 입밖에 내놓았다.
『어,당신 아빠 영혼이 주위에 있는 것 같은데…아마 우리 둘의 사랑을 축복해 주려나봐!』 채신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민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얘기를 하고 나니 전에도 써먹은 적이 있던 말이다.아무래도 효과가 좋아 다시 떠오른 듯 했다.이제 그녀는 민우가 떠나기 전까지는 민우 곁을 떠날 수 없는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민우는 그녀에게도 아버지가 보낸 운명적인 연인인 것이다.그렇게 민우는 많은 여자들을 자기의 포로 수용소 안에 가두고 즐겼다.이 여자 저 여자를 탐하다 보니 차츰 민우는 주미리가 죽은 것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주미리가살 아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여체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주미리에게 분석받는 동안에는 민우는 잠재했던 끼를발휘할 수가 없었다.보나마나 일을 저지르고 나면 다음 분석시간에 그대로 고해 바쳐야 했을 것이다.꿈을 분석하자면 꿈의 내용을 연상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지나간 일들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아쉬웠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기껏 힘들게 분위기를 잡아 여자를 은밀한 곳으로 유인을 해도 정작 덮치려 하면 주미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아마 일을 저질렀으면 주미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민우씨의 여자관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니예요.그러나 민우씨가 만나는 여자들마다에 그렇게 쉽게 빠지는것을 보면 아무래도 민우씨의 정서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민우가 주미리에게 분석받는 동안 건드린 여자라고는 아내 지은 한명 뿐이었다.다른 여자는 기껏해야 술취해서젖가슴정도 애무했을 뿐이었다.그러나 지금 민우는 여러 여자들을만나고 있었다.그네들을 관리하는 데 힘든 것은 전화목소 리를 구분하기가 힘든 것 뿐이었다.민우는 별 기억도 못하는 데도 그녀들은 한결같이 「저예요」하고 전화를 걸어오기 때문이었다.오늘도 민우는 「저예요」하고 전화를 걸어온 한 여인을 만나기로 했다.바로 얼마전에 사랑의 포로 수용소에 가두 어 놓은 「채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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