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날 부처만 장관 지명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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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을 위한 4차 6인회의가 11일 국회에서 열렸다. 김형오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右>과 유인태 행자위원장<左> 등이 회의에 앞서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마지막이라고 공언한 11일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보고를 받고 “유감”이라 말했다고 한다. 작은 정부로 출범하려던 첫 구상이 헝클어진 탓이다. 그는 이날 밤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대책을 숙의했다.

작은 정부에 대한 이 당선인의 의지는 강렬하다. 신년 기자회견 등에서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드는 게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라고 강조했었다.

대선 직후 참모들이 “한나라당이 열세인 국회 상황 때문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처리할 수 없을 거다. 총선 이후에 하자”고 한 조언도 뿌리쳤을 정도라고 한다.

참모들이 우려하던 상황에 봉착한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통합신당은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몸집을 더 키웠다(141석). 이 당선인이 추가 양보안을 내지 않으면 합의 통과는 어려운 실정이다. 통일부를 존치하고 국가인권위를 독립기구로 유지하는 양보를 했던 그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나를 양보한다고 합의될 것 같지도 않다”(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는 불신도 있다.

그래서 이 당선인 주변에선 현행 정부조직법에 따라 장관을 임명하되 개편안에서 없어질 부처의 장은 임명하지 않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의 경우 재경부 장관만 임명하고 예산처 장관은 임명하지 않고 차관 체제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개편안에 통합 부처의 경우 차관을 두 명 둘 수 있도록 한 만큼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중에 통과되더라도 큰 충돌이 없다는 고려도 했다.

총선이 끝나고 새 국회가 구성되는 6월까지는 ‘비정상 체제’로 가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2∼3일 내에 국무위원 15명(현행 19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이 시나리오는 그러나 구여권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부담이다. 일부 장관만 임명하는 동의안을 구여권이 처리해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부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

정부조직 개편 협상이 이대로 파행으로 끝난다면 논란은 선거판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 4·9 총선의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하는 신당 측에 부담이다. 하지만 이 당선인 측도 부담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당선인의 한 측근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이 당선인 주변에선 “당선인이 12일 하루 깊은 고심을 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글=고정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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