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나 저나 그 놈이 주미리를 살해한 것만은 분명하다.자기가 그렇다고 입으로 그랬으니까….
강태구가 김민우의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문을 잠그고 있었다. 『오늘 진료 안합니까?』 『네 안해요.원장님이 피곤하시대요.』 강태구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간호사를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섰다.「여보세요.뭐하는 거예요」라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쫓아왔으나 김세진형사에게 이내 막혀버렸다.
강태구가 진료실 문을 들어서자 한 초췌해 보이는 남자가 하얀가운을 걸치고 창 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운만 입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환자였다.그의 책상 위에는 하얀 부고장이 하나 펼쳐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강태구가 건너편 의자에 앉으며 목소리를 깔았다.이런 놈은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그러나 그는 못 들은척 여전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강태구가 그의 책상으로 구속영장을 내밀었다.
『구속영장입니다.자세한 것은 경찰에 가서 얘기하시죠.』 그러나 그는 여전히 조용했다.강태구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형사생활30년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다.
그런데 나에게 잔꾀를 부리다니….강태구는 크게 목소리를 높여외국 영화의 검사같이 대사를 다.
『김민우씨,당신을 주미리씨 살해범으로 체포합니다.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김민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강태구는 수갑을 들고 그의 곁으로다가가 그의 팔목에 채웠다.
차가운 감촉이 민우의 팔목을 타고 흘렀다.민우는 천천히 강태구를 올려봤다.눈앞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주미리씨 살해 사건 아시죠.』 민우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 사건의 용의자로 당신을 체포합니다.물론 한두가지 보강 수사가 필요는 하지만….』 민우는 쓸쓸하게 웃었다.
『나는 범인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강태구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따라 창 밖을 봤다.창 밖에 뭐라도 있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