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제2부 불타는 땅 꽃잎은 떠 물 위에 흐르고(1)저쪽 섬에 화장터가 있다고 했지.소나무가 마치 모자를 쓴 듯이 자라고 있는 섬을 건너편 화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본다.햇빛 파도가밀려가 섬 주변에서 하얗게 칠을 하듯이 부서지고 있다.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사람이 죽으면 실어다 태우는 화장터 하나 뿐 저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연고 없는 사람의 뼈를 모아두는 납골당이 하나 있고 거기 그혼을 위로하는 돌비석도 하나 있다고 했다.나 같은 년 죽으면 거기에다 앉혀지겠지.
방파제 끄트머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화순은 희미하게 웃었다.꿈도 야물구나.너같은 걸 누가 거둬서 태워나 주겠다구.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아 그녀의 옆에 내려앉았다.무릎을 감싸고 앉아서 화순은 수선스레 움직여대는 갈매기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이것들도 내가 사람같지 않다는 소릴까.내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여기 와 이렇게 태평한 건가.
갈매기 하나가 뒤뚱거리듯 걸어서 그녀 가까이 다가오더니 꼬리부분을 들썩이며 똥을 내갈겼다.화순의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이 감돈다.이것들이 사람을 무시해도 보통이 아니네.내 꼴이 사람은커녕 제 동무도 못 된다는 투야.
순간 갈매기들이 화들짝 놀라듯 일제히 날아 올랐다.깃털 몇 개가 빠져서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렸다.갈매기를 따라가던 그녀의눈길이 하늘에 가 멎는다.
맑기도 하다,오늘은.
어쩌자구 하늘이 저렇게 맑은가.햇살도 곱기도 하고.자신이 마치 함께 날아가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며 바닥에 남아 있는 갈매기한마리처럼 느껴져서 화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고개를 숙이며바다를 내다보는 그녀의 입술이 가짓빛으로 푸르 스름하다.
몸이 풀리지가 않아.잠을 자본게 언젠지 모르게 사니… 낮이면깜박깜박 졸리다가 자리를 펴고 누우면 눈만 말똥거릴 뿐,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멍하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고,이러다 죽지 싶은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지만,그게 또 다 남의 일 같기만 하니 내가 어쩌려구 이러는지,내가 나를 모르겠으니.
목발을 하고 절름거리며 다가온 명국이 화순의 등뒤에다 대고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어째 넌 거 같더라니.』 화순이그를 돌아보았다.
『모처럼 동무가 생겼는데 누가 쫓았나 했더니 아저씨였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