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CEO 대통령’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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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건국 60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절감했다. 그런데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CEO형 대통령’이라는 게 흥미롭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경제·사회·문화의 각종 정책이 결정되고 여당과 국회가 좌지우지되는 게 제왕적 대통령이다. 그런 권력 행사에 넌더리가 났다면 ‘민주적 대통령’을 기대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아마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대한 답답함, 과거 고도 성장기에 대한 향수,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 역할만 하는 데 대한 반감 등이 결합돼 CEO 대통령을 외치게 된 것일 게다.

이제 3주 후 10번째 대통령에 이명박 당선인이 취임한다. 그는 CEO형 대통령일까, 민주적 대통령일까.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19일 밤 당선이 확정됐을 때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섬기는 리더십’ ‘머슴 리더십’을 내세운 것이다. 그는 불교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불교의 ‘하심(下心)’을 언급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선인에게는 민주적 리더십보다는 CEO 리더십이 훨씬 친숙하지 않을까. 수십 년을 현대건설의 CEO로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기업의 CEO는 민주적이지 않다. 이익과 효율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직원을 섬기고 받든다? 그건 직원의 충성심을 자극하려는 위장술일 경우가 많다. CEO는 기업이 어려울 경우 언제라도 구조조정에 나선다. 자신이 추진하는 새 사업계획에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물론 기업에도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있지만, 정치에서의 국회나 대법원처럼 견제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CEO 대통령은 민주적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제왕적 대통령과 가깝다. 싱가포르와 중국, 또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로 CEO형 리더십이다. 현명한 CEO형 지도자는 경제 성장에는 아주 효율적일 수 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이며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민주적 절차가 CEO에게는 결코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당선인의 40여 일간의 행보는 CEO형이었다. 섬기는 리더십의 사례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새 청와대는 수석의 숫자는 줄어들겠지만 권한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다. 새 정부의 총리는 자원외교의 특사 정도로 위축됐다. 민주노총 지도부와는 만날 약속도 깨버리고, 말썽 많은 영어교육 정책의 공청회에 반대 의견을 피력할 전교조는 부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새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할 세력’으로 일찌감치 규정된 셈이다. 비록 그들이 한노총이나 교총에 비해 덜 협조적이라 해도 아예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원천 봉쇄하는 게 정당할까. 그들도 섬김을 받아야 할 국민인데 말이다.

“무조건 따라오라” “섬기는 방식은 내가 정한다”는 건 이미 ‘섬기는 리더십’ ‘머슴 리더십’이 아니다.

새 정부는 실용주의를 국정 운영 철학으로 내걸었다. 이념 과잉 시대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국민도 기꺼이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실용과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비정함과 독선으로 흐를 수 있다. 비효율성에 대한 거부감은 자칫 민주적 절차마저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의 확대판이 국가일 수는 없다.

김두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