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자연 재해인가 환경의 복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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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이 폭설로 비상이다. 국가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일주일 이상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으니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천재보다는 인재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은 2006년 기준으로 지구 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최대 배출국이다. 미국보다 10억t이나 많은 60억2000만t을 매년 지구 상공으로 쏟아낸다. 프레온·메탄 등 모든 온실가스를 합치면 270억t(2005년 기준)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 이 가스배출의 주범인 공장의 절반 정도가 광둥(廣東)성 등 남부해안 지방에 몰려있다. 그래서 세계 기상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 중국 남부지역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구름 속 수증기 증발량이 많아졌고, 이 수증기가 중국 북방의 차가운 기단을 만나 얼면서 폭설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온난화가 만들어 낸 기상재해의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 역대자연재해연구소도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지나친 경제개발로 인한 환경재해 가능성에 무게를 더 뒀다. 이 연구소의 허즈칭(赫治淸) 연구원은 “우리가 환경을 무시하고 경제개발에만 집착한 일종의 대가이며 이것은 시작일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노력은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지난해 말 중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지구온난화 방지 국제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거부했다. 지난 100여 년간 선진국들의 산업화로 야기된 온실가스 문제를 개도국인 중국에 전가하려 한다는 논리였다. 내면에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돼온 고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히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환경 문제는 경제발전의 핵심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환경재앙이 얼마나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지를 체험하고 있지 않는가. 다행히 중국인들도 이를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달 30일 수많은 귀성객들이 몰려있는 중국 남부 광둥성 광저우(廣州)시 역으로 취재 갔을 때 만난 무역회사 직원 징즈레이는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라 온난화의 영향”이라며 “내년 겨울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광저우에서> 최형규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