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영화] 돈을 줄게 몸을 다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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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윤인호
출연:변희봉·신하균·이혜영·손현주·이은성
등급:15세 관람가

 누군가 어마어마한 현금을 걸고 내기를 하잖다. 이쪽은 가진 게 없으니 막연히 ‘몸’을 걸란다. 이거 밑져야 본전, 잘하면 일확천금의 엄청난 기회다. 가난한 거리의 화가 민희도(신하균)는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의 황당한 제안에 코웃음을 쳤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는 여자친구(이은성)의 처지를 보고 내기에 응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내기를 제안한 강노식(변희봉)은 사채업계의 큰손. 돈이라면 넘치고도 남지만 늙고 병든 그에게 청년 민희도의 젊은 육체야말로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손에 넣고 싶은 자산이다. 내기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민희도는 뇌와 척수를 모두 이식하는 수술을 거쳐 강노식과 몸이 바뀌고 만다.

‘더 게임’은 흡사 만화 같은 설정이 퍽 흥미로운 영화다. 실제로도 일본 만화가 원작인데, 상상력의 장르라는 점에서 만화와 영화는 그리 멀지 않은 관계다. 현실에서야 불가능한 일이지만, 외모 바꾸기는 ‘페이스 오프’같은 여러 영화에서 봤던 바. ‘더 게임’은 과학적인 이론을 들먹이는 대신, 수술대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육체에서 뇌와 척수를 드러내는 강렬한 시각효과로 설득력을 돌파한다.

그 다음은 배우들의 몫이다. 머리 희끗하고 구부정한 노인 강노식의 몸으로 청년 민희도의 소심한 심성을 드러내야 하는 변희봉, 반대로 새파랗게 젊은 청년 민희도의 몸으로 노인 강노식의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성품을 표현해야 하는 신하균 모두에게 상당히 도전적인 역할이다. 일종의 1인2역 격인 두 배우의 연기는 그 자체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아쉽게도 이 영화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무모한 내기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 가난한 청년과 늙은 부자의 서로 다른 취향 등등 이야기에 잠재된 흥미로운 모티브가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다. 영화 전체가 이야기의 뼈대를 스크린에 옮겨놓는 데 급급하다. 스릴러 영화로서 몇 차례의 반전이 등장하는데, 그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 만화적인 설정이라도, 실사 영화가 포착할 수 있는 사실적인 디테일의 누락이 축적되면서, 후반부의 반전은 반전을 위한 설정으로만 머문다.

두 남자 사이에서 민희도의 삼촌이자 화투판에 빠져 있는 도박꾼 민태석(손현주)이 요긴한 역할을 한다. 몸을 빼앗겼다는 황당한 주장을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몸을 되찾으려는 조카의 조력자가 된다. 변희봉과 손현주의 호흡이 빚어내는 몇몇 웃음이 재미있다. 또 다른 조력자는 강노식의 아내(이혜영)다. 막대한 재산을 노려 병든 남편이 숨 넘어갈 순간만 기다리던 그녀 역시 몸을 되찾으려는 민희도를 돕게 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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