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婚式 앞두고 8旬부부 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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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식을 못낳는다는 이유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았는데….』 올해 80세인 張모(서울송파구)할머니는 10일 결혼 60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를 1년 앞두고 남편 朴모(80.경기도성남시)할아버지와 59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18세때인 36년 고향 함경도에서 朴할아버지와 혼례를 올린 張할머니는 혼인한지 20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 부부는 결국 張할머니 여동생의 딸을 입양해 친자식처럼 기르며 자식없는 설움(?)을 달래 왔다.
그러나 자상하기만 하던 朴할아버지는 자식욕심이 앞섰는지 60년대 초반 어느날『얘는 내 핏줄이 아니다.딴 여자에게서라도 아이를 낳아 기를테니 그렇게 알라』며 張할머니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65년 朴할아버지는 씨받이 여자와의 사이에 딸을 낳아 집에 데려왔고 張할머니에게 입양한 딸과 함께 잘 키우라고 당부했다.
여동생의 딸과 남편이 낳아온 딸을 키우는 걸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원만하게 가정을 꾸려온 張할머니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88년 남편의 친딸을 출가시키면서부터.
朴할아버지는 친딸이 결혼하자 평생을 해로해온 부인을 구박하기시작한 것이다.朴할아버지는 결혼생활중 모은 3천2백여만원을 부인 몰래 친딸 부부에게 주었고 92년엔 자신 명의로 등기된 시가 1억3천만원짜리 아파트까지 딸 부부에게 넘겨 주겠다며 상속포기서 작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朴할아버지는 부인이 이를 거부하자 손찌검하는 일이 잦아졌다.
93년8월 상속포기서를 쓰라는 남편의 강요를 거부한 張할머니는 朴할아버지가 5천원을 주면서『상속을 포기하지 않을바엔 나가라』고 윽박지르자 분하고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 그대로 집을 나와 별거를 시작한뒤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청구소송을 냈다.
담당재판부인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李太云부장판사)는 여러차례 화해를 권해보았지만 두사람의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재판부는 10일 이례적으로 80세인 張할머니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한편,『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1천만원과 재산분할로 3천5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李相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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