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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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27) 아침이었다.일찍 잠이 깬 지상은 어제 길남이와 걸었던 그 비탈길을 내려와,작은냇가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다만 빨래터같은곳도 있었고 물을 길어가는 곳인가 보다 생각나게도 돌을 가지런하게 모아 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눈에 띄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지.이렇게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어째서 서로 등을 지고,편을 가르고,그러면서 엎드려 기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채찍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게 살아야만 하는 건지.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집에 일본사람들이 사는가 보았다.여자들이 양동이를 들고 시냇가로 나와 몸을 숙이고 물을 푸기 시작했다.여기서 빨래도 하고 물을 길어가기도 하는가 보았다.인부들도 여기 나와 몸을 씻기도 하고 그러던데… 그런 생각을하며 양동이를 든 여자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상은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시냇물 건너편에서 아이들 몇이 우르르 몰려왔다.그들이 서로 엉켜서 무어라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며 지상은 이야기라도 건네 볼 생각으로 시냇가로 내려갔다.그가 물가에 다가갔을 때였다.모여 섰던 아이들이 지상을 건너다보며 갑자 기 몸을 구부렸다 펴며 무언가를 던지기 시작했다.
돌이었다.
더러는 좁은 시냇물에 빠지기도 하고,더러는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그들이 던진 돌이 지상의 어깨 너머로 넘어갔다.툭 하고 돌 하나가 날아와 지상의 발앞에 떨어지고,몇 개의 돌이 물방울을 튕기며 시냇물에 떨어졌다.
아이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조센징,조센징.』 『없어져,꺼져버려.』 『더러운 놈아,조선놈아.』 갑작스런 일에 놀라며 지상이 언덕을 기듯이 뒤돌아 올라갔다.아이들의 돌팔매질과 함께 조선놈을 부르는 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비탈길로 올라와 선 지상은 어금니를 물면서 냇물 건너편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이 웃어대면서 돌아가고 있었다.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져갈 때까지 지상은 그렇게 서 있었다.미치코는 꿈이었나.눈뜨면 어디에서도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꿈이었던가 .내가 만나 사랑했던 여자,그 미치코는…일본사람이 아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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