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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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26) 지상이 물었다.그건 다른 말로 하자면,일본의 전쟁거점이 된다는 뜻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까지는 나도 모르겠고….』 길남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뭐 우리 신세에 그렇게 어렵게까지 생각할건 없지 않을까.우리야 그냥 여기서.』 지상이 길남의 말을 끊었다.
『땅이나 파면서, 죽이 끓든 밥이 되든 상관할 게 없다는 거냐?』 『상관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까.
뭘,어디를,어떻게 상관할 수가 있다는 거냐? 우린 뭐랄까,그냥 노예야.잡혀서 끌려온 노예라구.』 『그러나,그보다 먼저 사람이지.』 지상을 노려보듯하는 길남의 두 눈썹 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넌 여전히,아직도 사람이냐?』 서로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길남이 똑바로 지상을 바라보았다.눈길을 피하지 않으면서 지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난,아직.』 『좋은 세월 살았다고 생각해라.징용을 나왔어도 어디서 팔자 늘어져서 살았구나 그동안,너.』 지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랬는지도 모르지.징용나온 놈이,맞아죽기는커녕 아직 생생한데다 일본 여자를 사랑하게까지 됐으니… 그것도 고향에 처자식의 눈이 시퍼런 놈이. 길남이 냇물을 내려다보며 마른 풀을 깔고 앉았다.지상도 옆에 나란히 앉아 흘러내려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징용나온 사람들이 갇혀 있는 저쪽 탄광 얘기 좀 해줄까? 거긴 지옥문이라는 게 있지.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어.거기서는 죄수들도 일을 해.돈 벌러 온 놈,우리처럼 끌려온 조선놈,그리고 죄수들까지 있다는 얘기야.그 섬으로 들어 가는 문을 지옥문이라고 해.죽어서 밖에는 나오지 못한다는 곳이야.그만 두자 그런 얘기.』 길남의 눈을,그 흔들리는 눈빛까지 지켜보고 있던 지상이,단정하듯 물었다.
『너,거기 있었구나?』 길남이 대답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왔냐?』 어딘지 만만치 않은 데가 있겠구나 생각했었지,널 처음 보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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