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백과>의료전달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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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매년 한번씩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건강진단에서 혈압이좀 높다는 판정을 받았다.건강에는 항상 자신이 있던 터라 고혈압이 있으니까 좀 더 세밀한 진찰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고보니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래도 건강이 가장 중요하므로 오랜만에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진료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한다는 이야기가 집근처 의원에 가서「진료의뢰증」을 받아오라는 것이다.응급환자외에는 진료의뢰증이라는 서류가 있어야대학병원과 같은 소위 3차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을 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괜히 짜증스러워 지면서 이 친구가 날 고생시키려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더구나 생전 병원이라고는 가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 하겠는가.그뿐아니다.몸이 아픈데 가고 싶은 병원에도 마음대로 못간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3차 의료기관으로 분류되는 대규모 병원은중증인 환자를 진료대상으로 하고 있다.그러므로 큰 병원은 더 중증인 환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또 중증환자가 많은 큰 병원에서는 가벼운 질병을 앓는 사람은 소홀히 대해질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가벼운 고혈압환자의 경우 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더 좋은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집이나 직장에서 멀지않아 이용이 편리한의원에 자주 들러 혈압 경과를 보고 필요한 검사를 해보면 복잡한 병원에서 시달리며 불편한 진료를 받는 것보 다 더 신속하고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때가 많다.그렇게 진료를 받는 도중 혹시 큰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가 원하지않아도 진료 의뢰증을 떼주며 원하는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도록 해줄 것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평소에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주던 의원 또는 중소병원에서 우선 진료를 받고 필요할 때만 큰 병원을이용하는 것이 바로 「의료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의료기관 간에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국가적으로도 불필요하게 큰 병원을 많이 설립해야 하는 비효율성을 피할 수 있으므로 도움이 된다.복잡한 대학병원의 대기실에서 왠 환자가 이렇게 많으냐고 한탄하기 전에 자기자신부터 꼭 대학병원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인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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