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영어교육 혁신 현실성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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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어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는 모양이다. 엊그제 수능에서 영어를 영어능력인증시험으로 대체한다는 대통령직 인수위 발표 직후 나타난 현상이다. 실용영어 강화는 호재라며 학원가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는 것이다. 영어능력인증시험은 어학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문제는 학교 영어 교육으로 대비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학교 교사들은 난색이다.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학원가의 환호가 현실화될 우려가 큰 이유다.

인수위로선 무턱대고 제도부터 바꾼 건 아니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다.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 중에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가 끼여 있기 때문이다. 고교를 마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표적인 실천방안으로 내세운 게 영어로 하는 수업 확대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의욕 과잉은 아닌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현실에선 영어 못하는 영어교사가 태반이다. 전국 3만2000여 명의 초·중·고 영어교사 중 ‘영어로 주당 1시간 이상 수업할 수 있다’는 교사는 49.8%에 불과하다. 그 1시간도 교과서를 읽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방치될 게 뻔하다. 이러니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영어 교육은 단기간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단계적으로 바람직한 교육 모델을 만들어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가장 급한 게 교사의 전문성이다. 교사의 영어 구술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어능력인증제’를 도입하거나 지역별 ‘영어교사 교육센터’를 만들어 영어 전문교사 양성에 나선 일부 교육청의 시도는 이런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궁극적으로는 교원 양성 단계에서부터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길러내도록 사범대·교육대의 교육과정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준비 없이 제도부터 고쳐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고 대비가 가능한 제도여야 한다. 이 정권 내에서 다 이루겠다는 조급증으로 교육을 망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