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이 시대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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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22일 “대한민국 공직자가 불과 20∼30년 전 후진국에서 중진국, 선진국 문턱에 오기까지는 어느 나라 공직자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갖췄고 능력도 있었다”며 “(하지만) 어떻게 하다가 조금, 어쩌면 이 시대에 약간의 걸림돌이 될 정도의 위험 수위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비전 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 참석, “공직자도 자기 자리만 생각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실 그는 관료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1965년부터 27년간 현대에 있으면서, 또는 2002년부터 4년간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절감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1 과제로 삼은 이유기도 하다. 그는 개편안을 발표하기 전 “부처 이기주의 따지고 견해 안 맞으면 뒤에서 딴소리하는 소아병적 생각을 갖고는 우리가 목표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1월 1일 시무식)고 지적했다.

 그런 그가 ‘공무원=걸림돌’이란 표현까지 썼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공무원의 반발 움직임에 이 당선인이 황당하고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통폐합 대상 부처의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기업과 관련 단체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와 구 여권까지 찾아다니는 건 선을 넘었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물러나면 그만인 장관뿐만 아니라 고위 공직자들까지 나서는 상황도 어처구니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 이 당선인은 이날 한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어느 부서는 공직자들이 산하 기업인을 동원해 인수위원들을 찾아다니면서 (통폐합되지 않도록) 로비하고 다닌다. 나도 부탁받아 다녀 본 일이 있지만 다 옛날 방식”이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 관료가 산하 기업인을 불러 ‘당신 누구 찾아가라’는 건 통하지도 않지만 굉장히 낡은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측근들은 ‘어느 부서’에 대해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전 부처가 그렇게 하고 있다”(박재완 정부혁신·규제개혁 태스크포스 팀장)고 전했다. 다음은 이 당선인의 발언 요지.

 “지난 한 달간 국정을 샅샅이 살피면서 이렇게 막힌 곳이 많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참 기적이다. 그냥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사방이 막혔는데 용케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길목을 다 막아놨다. (정부조직 개편은) 흩어진 기능을 좀 모아 보자고 한 것이다. 사실 더 욕심 낼 수 있었는데 헌법에 국무위원이 15명이 있어야 한다고 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를) 실천하려는데 사방의 이해 당사자들이 전부 길목을 막고 있다. 한 번 진통을 겪더라도 위대한 한국을 만드는 데 마음을 열어야 한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없고 기업이 따로 없고 근로자가 따로 없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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