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강태공, 기다림에 지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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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 최철한에 패해 2대2

23일 열린 최강 이창호9단과 무서운 신예 최철한6단의 국수전 도전기 4국이 한 가닥 미스터리를 남긴 채 끝났다. '보증수표' 이9단이 스스로 금기로 여겨온 대마잡이에 나섰다가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언제나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화염을 식혀주던 이창호가 이날은 우세하다는 만장일치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화염이 되어 강물에 뛰어들었다. 석불 같던 이창호9단도 모험이 그리웠을까.

이로써 국수전은 2대2 타이스코어가 됐고 다음달 2일 열리는 최종전에서 승부를 가리게 됐다. 전망은 안개 속이다. 4국까지 흑번필승으로 진행되고 있어 5국에서 누가 흑을 잡느냐 하는 점도 변수다.

한편 최철한6단은 지난 20일 벌어진 기성전 도전자결정전에서 유재형6단을 불과 1백31수만에 불계로 꺾으며 도전권을 쟁취했다. 기성 타이틀보유자 이창호9단과의 도전기 첫판은 28일. 국수전과 함께 이창호-최철한의 더블매치가 시작된 것이다.

*** 다 잡은 大魚 놓치다

<하이라이트>=대마불사라는 기훈이 암시하듯 대마잡이는 본시 프로들이 금기로 여기는 것. 그러나 이창호9단은 거침없이 대마잡이에 나섰다. 형세는 백을 쥔 이창호9단의 우세. 이9단 특유의 부드러움과 견고함이 절묘하게 배합된 명국이라는 평가였다. 그래서 대마잡이는 더욱 미스터리로 다가온다.

<장면1>=양재호9단.루이나이웨이9단 등 해설자들은 백 우세를 단언하고 최철한6단도 졌구나 생각하던 바로 그 무렵, 백을 쥔 이창호9단이 중앙 대마에 1로 가일수했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수. "끝났다는 건가. 그렇더라도 이 수는 너무도 신중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백1은 확실하게 자물쇠를 채우는 수로 비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9단은 돌연 좌상귀의 사활조차 외면한채 7, 9로 대마를 잡으러 왔다. 놀라운 사건이었다. 잡는 척하다 말 줄 알았는데 이9단은 계속 나갔다.

<장면2>=대마잡이에는 6의 수순이 필요하고 그 수순이 성립되려면 백△가 필요하다. 이9단이 백△를 둘 때부터 대마잡이를 결심하고 있었다는 게 어렴픗이 감지된다. 8, 10에 이르러 대마는 살아날 길이 없어 보였다. 최철한6단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창호9단이니까 1백% 죽었구나 싶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대마는 역시 쉽게 죽지 않는 것. 최철한의 정확한 대응으로 대마는 패가 났다. 이때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이9단에겐 패를 포기하고(대마잡이를 포기하고)계산으로 이기는 코스가 마지막까지 있었다. 어찌 보면 쉬운 코스였으나 이9단은 끝끝내 대마를 잡으러 갔고 결국 자폭하고 말았다. 이9단은 백△의 자존심을 살리려 한 것일까.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험을 즐긴 이창호의 모습이 새롭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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