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클로즈 업] 거만한 지관 한방 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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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승지벽(好勝之癖)이 있다.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져 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전에 부딪치면 지는 것을 싫어한다. 수모를 당하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한 대 때려야 속이 시원하다. 복수심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마피아 영화를 좋아한다. 알 파치노가 나오는 '대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필자가 몇 년 전에 병신일주(丙申日主:外房子息 두는 팔자) 초식을 가지고 시원하게 한방 먹인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돌아가신 집안 어른의 묘를 이장할 일이 있었다. 그때 이장을 담당하는 50대 초반의 지관이 한 명 왔었는데, 이 지관이 아주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주변 친척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함부로 말을 하는가 하면, 필자에게도 반말 투로 삽 가지고 와라, 괭이 가지고 와라 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내가 동안인 데다 그날 청바지에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대학생 정도로 보였던 모양이다. 집안 어른들도 계시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그 지관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하였다. 다른 곳에 가면야 내가 큰소리 치는 입장이지만 집안 어른들 계신 데서 그럴 수야 없지 않은가. 하지만 속에서는 부아가 부글거렸다.

이 사람 손 좀 봐야 되겠는데 뭐 없을까…. 그날 산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 지관의 생년월시를 슬쩍 물어 보았다. 만세력으로 계산을 해보니, 병신(丙申) 월에 병신(丙申) 일이 아닌가.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옳지 이거다! 나는 '대부'에 나오는 마론 브랜도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지극히 함축적인 멘트를 하나 날렸다. "당신 외방자식 두었지!" 적중 확률 70%였다. 만약 틀리면 도리어 내가 망신당하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그 말을 뱉자마자 지관의 얼굴이 벌개지면서 대번에 말투가 공손해졌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알고 보니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하나 숨겨두고 있었는데, 마누라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엉겁결에 개인사의 중요한 비밀을 나에게 들켜버린 셈이었다.

다음날 산 일을 하면서 이 지관의 태도는 백퍼센트 바뀌었다. 내가 목이 마렵다고 하니까 두 손으로 공손하게 맥주를 따랐다. 집안 어른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음은 물론이다. 수 틀리면 불어버릴 판이었으니까. 병신 일 병신 월이라는 단서 하나 가지고 라이트훅을 한방 날렸는데 운 좋게도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사례다.

병신일주에 관한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어느 여성단체의 초청을 받아 '궁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의 내용 중에는 남자가 병신일주면 바람피울 확률이 높으니까 여자가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강의가 끝났는데 4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계단을 따라서 필자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남편 태어난 날 좀 한번 알아보아 달라고 반강제적으로 부탁을 한다. 할 수 없이 떠밀려서 만세력을 놓고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병신 일이었다. "병신일 입니다"하니까 갑자기 그 아주머니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살아야겠네요!"하는 대답이었다. 남편이 10년 전쯤에 외방자식을 두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정에도 이 사실을 발설하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평소에 자상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는 남자였으므로,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몇 달을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러던 차에 병신일주는 팔자에 외방자식을 둘 확률이 높다는 강의를 들었으니 귀가 번쩍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주머니가 흘린 눈물은 쓰디쓴 현실을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이혼을 해야 한다. 받아들이려면 신앙심이 필요하다. 주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든가, 전생의 업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은 팔자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팔자를 믿는 것도 때로는 미덕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사람은 속만 끓이다가 고혈압 당뇨가 와 버린다.

이처럼 병신일주에 대해 몇 번 적중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오만함과 한발 차이다. 선배 하나가 있었는데 50대 초반이었지만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나라 저 나라 외국생활도 오래한 경력이었다. 그런데 일주를 보니 병신일에 태어난 것이 아닌가. 나는 더 볼 것 없이 자신 있게 때려잡았다. "가만히 보니까 형님 여기 저기 자식 두고 있구먼요!" 그러나 그 선배는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이네, 왜 생사람 잡고 그래!" 결론은 헛방이었다. 외국에서 여자들을 사귀기는 하였지만 자식은 없었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누명에 대한 대가로 이날 고액의 술값을 지불해야만 하였다.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처럼 '혹중혹부중(或中或不中)'의 희로애락을 겪는다. 사주는 확률이지 백퍼센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조우석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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