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前대통령 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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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시대 어느사회에서나 정치인은 많은 적(敵)을 두게 마련이고 그 적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리도록 되어있다.뛰어난자질과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적을 만드는게 싫고 공격받는게두려워 정치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미국 대통 령을 지낸 해리트루먼은 『열기(熱氣.적과 공격을 뜻함)를 견딜 수 없으면 부엌에서 나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적의 공격에 대한 정치인들의 대응방식도 여러가지다.한 정치학자는 대표적으로 네가지 유형을 꼽았다.「결투」「법에의 호소」「맞공격」「공격의 무시」가 그것이다.결투의 경우 미국 7대 대통령을 지낸 앤드루 잭슨은 대통령이 되기전 자신을 악당이며 비겁자라고 비방한 정적(政敵)에게 결투를 신청해 사살(射殺)한 일이 있고,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을 중상모략한 정적을고발해 징역을 살도록 했다.똑같은 질량(質量)으로 공격에 맞선정치인들이 많은가 하면 독일의 비 스마르크나 영국의 애틀리처럼정적들의 공격에 시종일관 침묵으로 대응한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같은 네가지 대응방식은 모두 고전적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권좌(權座)에서 물러났느냐의 문제일 뿐 대응방식이 해결의 열쇠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권력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그 자체가 생명 을 건 모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을 많이 저지르고 퇴임한 정치인들은 늘 불안하게 마련이다.
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는『대통령직이란 전직 대통령이 되는 축복받는 신분으로 통하는 중간역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축복받는전직 대통령이란 재임중 선정(善政)을 베푼 정치인에 국한된다.
실수와 무리를 거듭한 전직 대통령이라면 퇴임 후 에도 그에게 피해를 본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계속 두려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도 걱정해야 한다.퇴임한 최고통치자들에 대해경호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만큼의 기간 까지「대통령 경호실법」에 따른 경호 경비를 하도록 돼있어 7년 임기의 전두환(全斗煥)前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24일로 끝난다고 한다.그 법에「본인이 거부하지 않는 경우」라는 단서가 의미심장하다.경호 경비를 거부하는 전직 대통령이야말로 축복받는 전직 대통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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