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다시 뛴다 … 황선홍 감독 ‘젊은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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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황선홍 감독이 부산 아이 파크 클럽하우스에서 팀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황선홍이 선수들과 골대 맞히기 내기를 하는 장면.

 “굿 패스, 좋았어.”(황선홍 감독)

 “내려와, 빨리 빨리.”(김판곤 수석코치)

 “승현아, 거기서부터 수비해야지.”(윤희준 코치)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훈련장은 시장통처럼 시끄럽다. 연습 경기를 하는 선수끼리 의사 전달을 하느라 고함이 끊이지 않고, 터치라인 밖에서는 세 명의 코칭스태프가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린다.

 ‘40대 기수’ 황선홍(40) 감독이 올해 부임하면서 노쇠하고 무기력한 팀에서 젊고 도전적인 팀으로 부산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 화려한 태극전사의 이력을 뒤로하고 전남 코치를 거쳐 올 시즌 처음 프로팀 사령탑을 맡은 황선홍 감독. 그가 어떤 컬러로 팀을 지휘할지 팬들은 궁금하다. 시즌을 앞두고 훈련 중인 황선홍 감독과 지난주 부산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리더십에 대해 애기를 나눴다. 그는 “카리스마를 앞세워 군림하는 게 아닌, 화합과 믿음의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 시즌 개막 후 5연패를 한다면?

 “전남 수석코치를 2년간 맡고 난 뒤 재충전과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해 지난해 영국으로 떠났다. 연수를 하면서도 프로 팀에서 감독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나 생각이 많았다. 젊은 팀으로 재창단하겠다는 부산 구단의 입장과 내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에 수락했다. 선수 때부터 ‘신뢰가 쌓여야 팀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함께 가자’고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개막 후 5연패를 한다면? 그래도 선수를 믿고 가야지. 사실 가장 두려운 건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마음이 급해져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 전반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한다면?

 “야∼어려운 얘기다.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속상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만의 하나 우리가 방심해 졌다면 신뢰가 깨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선수들을 크게 야단치든지 충격요법을 한 번은 쓸 것 같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 생각을 바꾸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히딩크 감독의 사람 다루는 노하우는 내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런 노하우는 고참들 정도면 다 아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만 속아 넘어갈 뿐이지. 충격요법이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꾸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중요한 건 소신을 지키고, 진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 팀과 융화되지 않는 스타가 있다면?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이천수를 뽑지 않은 것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만약 우리 팀에 개인행동을 하는 선수가 있다면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내칠 수밖에 없다. 한 선수를 싸안고 간다면 나머지 31명을 잃는 것이다. 나는 전남 시절부터 부드럽고 친화력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런 것까지 부드러워지면 오합지졸만 남는다. 우리 팀은 한 선수에게 의존해서는 올라설 수 없고, 한국 축구에서 혼자 팀 성적을 좌우할 만한 스타도 없다.”

 ▶ 시즌 개막이 부담스러운가, 기다려지는가?

 “기다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흥분된다. 우리는 선수층이 얇고 이름난 선수도 없다. 하지만 시즌 준비를 다른 팀보다 일찍 했고, 계획한 대로 착실히 가고 있다. 우리는 강한 수비와 빠른 연결, 그리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끝내는 공격을 펼 것이다. 그리고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투혼을 발휘해 지더라도 감동을 주는 축구를 할 것이다. 예상 성적은 중위권이다. 6강 플레이오프도 사실상 벅찬 목표다. 그렇지만 부산 축구팬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는 축구를 할 것이라는 약속은 드릴 수 있다.”
 훈련이 끝난 뒤 황 감독과 선수들은 페널티 라인에서 공을 차 골대를 맞히는 내기를 했다. ‘천하의 황선홍’은 꼴찌에서 2등을 했다. 황 감독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부산의 베테랑 심재원은 “감독님은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다. 올해는 뭔가 해낼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글=정영재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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