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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의사 1호’ 탄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남북한의 의학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은 다를 게 없지요.”

 북한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한 이경미(41)씨가 18일 발표된 제72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탈북자 출신 첫 여의사가 됐다. 과거 남자 탈북 의사가 의사고시를 치러 합격한 사례가 있지만, 인턴 과정을 밟다 숨졌다. 탈북자 중 남쪽에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경우는 있어도 여의사는 없었다.

 이씨는 북한에서 평양의학대학 박사원(대학원)을 마치고 2년간 평양 시내의 한 병원에서 근무한 뒤 남편과 제3국에서 10년간 의료 지원 활동을 하다 탈출해 2004년 말 입국했다. 국내에선 2006년부터 의사 시험을 준비했다. 남편과 외동딸을 회사와 학교에 보내면 곧장 도시락을 들고 동네 도서관을 찾아 의학 서적을 파고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북한에서 배웠던 의료 용어는 전혀 쓸모가 없고 남한에서 사용하는 낯선 의학 용어를 다시 익혀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협심증 수술이지만 북한에서는 ‘관상동맥중제술’, 남한에서는 ‘CPI’로 부른다는 것이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도 이씨에겐 어려움을 줬다. 이씨는 “북한에선 고위간부도 초음파, CT와 같은 첨단 의료기기는 쓰지 못한다”며 “이런 기기를 처음 접하고 영상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이 너무 생소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제3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사용했던 영어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씨는 “의사가 환자를 책임지는 것은 남북이 같다”며 “최선을 다해 남한 의사로서의 제2의 삶을 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북한에 있는 친지들에게 미칠 영향을 의식한 듯 사진 찍히는 걸 극구 피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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