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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입시 뺨치는 해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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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박유화(26) 이병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초·중·고교를 독일에서 마치고 예나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5월 고국을 찾았다.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서였다. 체력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독일에서 6개월 동안 헬스장을 다녔다. 그는 입국 두 달 만에 그토록 원하던 해병대원이 됐다.

 해병대 상륙작전침투(IBS)조 소속 김형탁(24) 병장은 2005년 7월 해병대 문을 두드렸다. 대학 2학년 때였다. 탈락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또 떨어졌다. 면접시험에 대비해 상식책을 끼고 살았다. 연거푸 실패했다. 면접 때 목소리가 작았다고 생각한 그는 동네 뒷동산에서 “아악~” 하며 해병대 특유의 고함 연습을 했다. 붙었다. 5수(修) 만에 합격했던 것이다.

 해병대에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웬만한 대학 입시 경쟁률을 뺨친다. 편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와 달리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줄지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해병’이 되겠다는 일념에서다.

 해병대 관계자는 “지난해 입대 경쟁률이 평균 3.5대 1이었는데, 대학 휴·복학 시기와 겹치거나 지원자가 몰리면 10대 1까지도 치솟는다”고 말했다.

 ◆라식수술 후 입대=18일 경북 포항시 오천읍 해병대 1사단. 전력 측정 훈련장에서 만난 이이삭(22·상륙산악대대) 일병은 지난해 3월 해병대 1042기로 입대했다.

 고교 때부터 ‘귀신 잡는 해병’을 꿈꾸며 복싱과 수영을 배워온 그였지만 2006년 11월 첫 번째 도전에서 미끄러졌다. 재수(再修)를 결심한 그는 산악구보와 수영에 매진한 끝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8각 모자를 썼다. 이 일병은 “해병은 전역할 때 ‘추억록’이라는 사진첩을 들고 나가는데 내 일생에 가장 귀한 기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재일(24·산악대대) 병장은 2004년 신체검사에서 ‘고도근시’와 ‘망막 굴절도 이상’으로 4급(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연세대 경영학부를 다니고 있었다. 손 병장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라식수술도 받았다. 그러곤 2006년 3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는 “친구들이 왜 그렇게 힘든 해병대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지만 기수 문화가 엄격한 이곳에서의 경험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올 1월 입대한 1061기 495명 가운데 재수 이상이 57명이고, 라식수술 등 지원 가능한 신체요건을 충족시킨 뒤 합격한 훈련병도 16명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해병대가 신체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임무의 특수성 때문이다. 해병대원들은 120㎏가량의 고무보트를 머리에 인 채 모래밭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헤쳐나가 적 해변에 침투해야 한다. 모든 대원이 4㎞ 이상 수영 능력과 낙하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해병 교육훈련단 입구에는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표어가 걸려 있다. 박유화 이병은 “모든 해병대원은 이 말처럼 자신감으로 무장, 혹독한 훈련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기록부까지 점수화=해병대는 선발 과정에서 지원자의 성실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적진 상륙이 임무인데 명령이 떨어지면 후퇴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점 만점 중 고교생활기록부 성적과 출석이 80점을 차지한다. 대학 학점이 아무리 좋아도 고교 때 결석이나 지각·조퇴가 많으면 해병이 되기 어렵다.

 서울 해병모병관실 정창섭 원사는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입대 문의 전화가 하루 700통가량 쏟아지고 있다”며 “적극성을 보기 위해 한차례 지원할 때마다 1점씩 가산점도 준다”고 소개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강한 파도가 강한 해병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상륙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조직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데다 한국의 3대 인맥으로 꼽히는 해병대만의 독특한 선후배 문화가 젊은이들에게 장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강기헌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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