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코미디로 끝난 民自 총무競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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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 오후 집권당 사상 처음으로 원내총무를 경선하기 위해 열린 민자당 의원총회는 한편의 코미디로 끝났다.
이날 생일(창당 5주년)을 맞은 민자당은 멋들어진 총무경선으로 잔치 분위기를 돋우려 했으나 스스로 재만 뿌렸다.그 전말은이렇다. 이날 의총은 설렘과 기대가 충만한 가운데 시작됐다.그때까지 총무후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1백70여명의 참석의원들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이춘구(李春九)대표에게 전달한「봉투」(총무후보 이름이 들어있는)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李대표가 봉투를 개봉하는 순간 장내는 몇몇 의원들의 침삼키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고요했다.후보자로 김영구(金榮龜.4선.서울 동대문을).현경대(玄敬大.3선.제주시)의원이 지명됐다는발표가 있자 박수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어 후보 정견발표 순서가 됐다.金의원은 李대표와 玄의원에게『먼저 말하게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저는 얼마전(93년)에 총무를 지냈으므로 훌륭한 인격과 능력의 소유자인 玄의원에게 양보한다』며 정견 아닌 사퇴의변(辯)을 밝혔다.이때 많은 의원들은『잘했다』며 박수를 쳤다.
다음은 玄의원 차례.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수험생이 전혀 모르는 시험문제를 접한 것같은 기분』이라며『드릴 말씀이 없으므로 여러분의 뜻을 받들겠다』고 인사했다.역시 박수가 나왔다.이때까지는 보기 좋았다.양보와 겸손의 미덕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는 소극(笑劇)이었다.당규도 잘 모르는 몇몇 목소리 큰 의원들이 분위기를 잡았기 때문이다.우선 율사출신강신옥(姜信玉.전국구)의원은『결과가 뻔한데 시간낭비할 필요있느냐』며 투표에 들어가려는 李대표를 제지했다.
그는 기립 또는 거수(擧手)표결을 제청하면서 『이게 세계화』라고 했다.
정필근(鄭必根.진양)의원등 몇명이 이에 큰소리로 찬동했다.
총무후보가 1인이더라도 제적의원 과반수 투표와 투표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총무를 뽑도록 명시한 당규를 무시한 언행이었다.
그러나 당헌.당규 개정을 주도한 문정수(文正秀.부산북갑)前사무총장.강삼재(姜三載.마산회원)기조실장과 김정남(金正男.삼척)의원등의 『안돼요』라는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경선은 이렇듯 싱겁게 무산됐다.『이게 당의 세계화냐』는 어느의원의 자조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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