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10년 통일부 시대는 지고 대북·외교 정책 ‘원톱’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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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사무실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를 TV로 지켜보던 통일부의 한 간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허…” 하고 한숨만 쉬다 입을 다물었다. 통일부의 한 실무 직원은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리는 무난히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수위의 전격적인 통일부 폐지안 발표는 신설되는 외교통일부에 통일부 업무를 가져와 외교통일부를 대외·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원톱’ 체제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여기엔 ‘대북 정책도 한·미 공조 등 대외 정책의 틀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수위는 전날까지 통일부 존폐를 놓고 고심했고 최종 결정은 이 당선인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좌파 정권 10년 동안 정부의 외교·대북 정책은 각각 외교통상부와 통일부가 맡는 ‘투톱’ 시스템이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서는 실력자였던 이종석·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까지 맡으며 외교부의 ‘대미 공조, 국제 공조’보다 통일부의 ‘민족 공조’가 사실상 우위에 섰다.
 그러나 이번 인수위 발표로 진보 정권에서의 남북 관계 우위 구도는 사라지고 남북 경협, 대북 지원과 같은 남북 현안은 한·미의 입장 조율이나 6자회담의 진척도와 같은 대외 변수에 따라 속도 조절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인수위에선 통일부의 운명이 극과 극을 달렸다. 인수위 이동관 대변인은 4일 “청와대·통일부 등으로 흩어진 대외 정책 기능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며 그간 흘러나왔던 통일부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사흘 뒤 그는 “정부 부처 개편은 국민 감정과 상징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해 존치를 시사하며 통일부를 안도시켰다. 하지만 16일 최종 발표로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출발한 통일부는 39년 만에 공중 분해될 상황에 처했다. 인수위에 따르면 통일부의 대북 교섭과 정책 업무는 외교통일부로 흡수된다. 대북 정보 분석 업무는 국정원에, 남북 경협은 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에, 북한 이탈 주민 지원 시설(하나원)은 지자체로 이관된다.

 문제는 통일부 폐지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론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해외 토픽감”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향후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때 대통합민주신당 등 구 여권에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포함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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