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수학] CT 촬영과 연립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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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방정식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수학고전인 '구장산술(九章算術)'에서 유래한 것이다. 총 9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8장이 바로 방정장(方程章)이다. '방정'은 사각형(方)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程)이라고 그 뜻을 풀 수 있는데, 당시 방정식을 풀 때 네모 안에 식을 써놓고 이리저리 더하고 빼면서 해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정식에서는 구하고자 하는 답, 즉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수(未知數)를 보통 χ라고 놓는다. 한창 유행하던 단어 'X세대'에서 굳이 알파벳 X를 쓴 것은 방정식의 미지수처럼 알 수 없는 세대라는 뜻이 있는 듯하다. 방정식에 입문하고 나면 '연립방정식'을 배우게 된다. 다음은 조선시대에 인기가 높았던 수학책 '산법통종'에 실린 연립방정식 문제 중 하나.

"술집에 호주와 박주가 있다. 호주는 1병 마시면 3사람이 취하고, 박주는 3병 마셔야 1사람이 취한다. 호주와 박주를 합해 19병이 있는데 모두 33명이 마시고 취했다면 호주와 박주는 각각 몇 병이 있었겠는가?"

이 문제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은 호주와 박주 두 가지며, 주어진 정보도 두 가지다. 사람들의 주량이 같다고 전제하고 연립방정식을 풀면 호주 10병, 박주 9병이 된다. 이처럼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미지수가 2개면 2개의 방정식이 필요하고, 미지수가 3개면 3개의 방정식이 필요하다 (물론 부정과 불능이라는 경우도 있다).

흔히 'CT'라 불리는 컴퓨터단층촬영을 할 때에는 체내에 X선을 통과시킨 후 X선이 신체의 각 부분에서 얼마만큼 흡수됐는지 측정한다. 이런 과정을 한 방향뿐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되풀이한다.

한 방향에서 X선을 투과시킬 때마다 신체의 각 부분을 미지수로 하는 방정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X선을 투과시키면 결국 연립방정식을 얻게 된다. 컴퓨터가 복잡한 계산과정을 거쳐 연립방정식을 풀면 각 부분이 X선을 흡수한 양을 알아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신체의 단면 영상을 얻을 수 있다. CT 촬영에서 연립방정식의 아이디어가 활용되는 것을 보면, 연관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엉뚱한 분야에서 수학이 유용하게 사용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 수학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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