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용적 총리란 어떤 자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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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새 정부 총리의 역할을 밝혔다. ‘대통령 보조가 아니라 독자적 업무를 갖고 국내외에서 일하는 총리’다. 청와대는 조정 기능에 한정되어 일을 하고 정부는 내각을 중심으로 일한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이 원칙을 지킨다면 선진적 정부 운영이 가능하다. 문제는 총리를 ‘실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한국의 총리는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내치를 주도하는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총리도 아니고 대통령의 보조자인 미국의 부통령과도 다르다. 헌법에는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자구(字句)만 보면 대통령 바로 다음의 무거운 자리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들이 거의 ‘제왕적 대통령’ 수준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리의 힘은 법보다는 인물에 좌우되었다. 역대 총리는 38명(서리 제외)이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 실세 총리였다. 대표적으로 김종필·강영훈·이회창·이해찬 총리다. 힘이 없으면 의전·간판·허수아비 총리였다.

이원집정부제나 부통령제로 바꾸지 않는 한 현재의 총리 직을 지혜롭게 운영해야 한다. 총리는 내각을 챙기고 여러 부처가 관여된 정책을 조정·지휘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 큰 일만 챙기기도 바쁜 대통령이 빠뜨린 구석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총리의 임무는 이런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당선인이 주문하는 것처럼 자원외교 같은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식이다. 적당히 ‘얼굴’ 총리로 임명해 놓고 큰 문제가 터지면 문책형 개각의 희생양으로 삼는 식은 안 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일할 수 있도록 분명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권력은 총리와 각료들에게 분산할수록 효율적이다. 실권은 없이 그저 대통령 눈치만 보게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챙기기 어려운 분야의 업무를 총리에게 맡길 수 있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