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自主的 對北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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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은 연초부터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정계개편.지진.홍수등국내외가 조용하지 않다.또 한가지,북한(北韓)의 대외문제가 부산한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베를린과 평양에서 각각 전문가회의를 가졌다.베를린은 경수로 공급 문제였고,평양은 연락사무소 설치件이었다. 서울과 워싱턴도 외교책임자들의 내왕이 분주하다.美국무부副장관이 방한한데 이어 우리 외무장관이 방미(訪美)길에 오른다.
남한과 북한 사이도 한가하지 않다.북한은 김일성(金日成)사후(死後)첫 대남 제의로 광복50주년 대민족회의와 이를 소집하기위한 정당회담을 요구했다.남한은 이를 선전술책으로 규정,대응제안으로 차관급 회담이라는 당국간 회의를 제시했다 .
해가 바뀌면서 거의 동시다발(同時多發)로 나타나고 있는 움직임은 정신이 혼란할 정도로 복잡하다.그러나 이같은 복합적 상황이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대충 두가지로 정리된다.첫째는 미국과 북한의 접근을 어떻게 인식해야하느냐이고 둘째는 북한의 대외개방 추세에 우리쪽 기본자세는 어떠해야 하느냐다.
美-北 접근에 대해서는 당사자 미국도 엉거주춤하고 있다.얼마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글이 이를 설명해준다.작년 가을 미국과 북한간 제네바 합의를 바라보는 미국내 상반된 시각을 부각한 내용이다.
『북한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 제목을「커보키언박사(회복 불능환자의 자살방조를 도와 논란을 일으킨 의사)의 외교」라고 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북한의 철통같은 전체주의 정권도 서방 투자와 외교적 접촉을 주사(注射)하면 서서히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美행정부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반면 북한과 함께 美공화당은 미국이 오히려 구명(救命)처방을 함으로써「은둔왕국」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그는 분석했다.
北-美 접근에 대해 엉거주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물론 개각으로 통일부총리와 외교사령탑이 바뀌었지만 우리 정부의 북한 개방유도 기본전략은 불변이다.그러나 여기엔 조건이 있다.北-美관계 개선은 남북대화 재개가 우선돼야 한다는게 전제다.이 점은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서도 다짐하고,국무부副장관이 서울에 와서도 얘기했으며 공노명(孔魯明)외무장관이 이번에 워싱턴에 가서 또다시 받아낼 서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남북대화「서약」이 아니다.대화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막말로 그것은 편의상 재개됐다가 중단될 수도 있고 대화내용.수준도 천차만별이다.대화재개 자체가한반도 상황의 만병통치책은 아니다.대화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韓美간에 중요한 것은 외면적 다짐과 강조가 아니라진정한 신뢰와 공조체제를 확립,유지하는 일이다.
엄연한 현실은 이미 미국은 대북 관계개선의 문지방을 넘어섰다는 점이다.미국은 머지않아 10자리 미만 숫자 규모의 외교관으로 구성된 연락사무소를 평양에 설치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은 남북대화 재개와 아울러 핵사찰.팀스피리트훈련 등의 대북 압력수단을 적절히 활용,강온(强穩)전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대북 관계개선은 어차피 가게돼 있는 길이다.
국민감정은 작년 제네바 합의를 한국의 소외로 인식했다.美-北랑데부에 한국은「물먹었다」는 생각이다.그 감정은 불가피한 단계이기도 하다.그러나 지나친 감정은 극복돼야 한다.이는 정부가 수행해야 할 과제다.백성들이 현단계를 긴 안목으 로,역사적으로,종적(縱的)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지금의 北-美 접근은 10년전,20년전엔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앞으로 발전될 상황도 냉전의 옷을 껴입은채 단기적.횡적(橫的)관점에서만 파악한다면 변화 때마다 진통을 더 심하게 겪을 것이다. ***장기적 眼目 가져야 정부는 국민을 조그만 변화의 고비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마치 미국이 강조하고 있는「남북대화 우선」에만 목을 걸고 있는 듯한모습을 행여나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이상하게,특히 요새 침묵하고 있는 안보정책 조정회의라도 열어 북한문제에 관한 자주적 대처자세를 취하고,논의 내용을 대내외적으로 고시하고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바란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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