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썰매 타고 월드컵 티켓 … 한국 봅슬레이 꿈같은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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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드라이버 강광배(선수<右>)와 브레이크맨 이진희(선수<左>)가 봅슬레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빌려 탄 봅슬레이 앞쪽에 ‘USA’라고 적혀 있다. [한국선수단 제공]

 1994년까지는 스키를 탔다. 무릎을 다친 뒤 루지(누워 타는 2인승 썰매)로 전향, 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는 루지·스켈레턴(엎드려 타는 1인승 썰매) 두 종목에 모두 나갔다. 당시 두 종목에 모두 이름을 올린 선수는 강광배(35·강원도청)가 유일했다. 그의 마지막 꿈은 봅슬레이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이다.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 강광배. 그가 밴쿠버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12일(한국시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인근 파크시티에서 열린 아메리카스컵 대회 봅슬레이 2인승 경기에서 강광배는 후배 이진희(강릉대)와 팀을 이뤄 출전, 7위의 성적을 올렸고 13일엔 8위를 했다. 이로써 국가별 랭킹이 18위가 된 한국은, 20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시즌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월드컵 시리즈와 다음달 독일 알텐부르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출전권도 얻었다. 선수가 부족해 강광배는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2003년 강광배는 한국 선수로는 첫 봅슬레이 선수가 됐다. 평창 겨울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청이 봅슬레이단을 창단한 게 계기였다. 2004년 처음 국제 무대를 밟은 이후 꾸준히 유럽과 북미대회에 출전했다. 성적은 20~40위권을 오갔지만 그렇게 실력을 쌓아갔고, 이번에 세계 정상의 선수들이 겨루는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출전 자격을 얻었다.

 루지나 스켈레턴처럼 봅슬레이 역시 열악한 여건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엷은 선수층은 문제도 아니다. 경기장이 없어 대표 선발전을 일본 나가노에서 치렀다. 2003년 강원도청팀 창단 때 구입했던 대표팀 전용 봅슬레이는 탈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상태다. 그래서 대회 때마다 외국에서 빌려 출전하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500달러를 내고 빌려 탔다.

 강광배의 개인 세계랭킹은 60위. 59위인 일본의 스즈키 히로시와 딱 두 명뿐인 동양인이다. 밴쿠버 올림픽 때 딱 한 장뿐인 본선 티켓을 스즈키와 다퉈야 한다. 강 감독은 “더욱 실력을 키워 꼭 올림픽 무대를 밟겠다”고 다짐했다. 

장혜수 기자

◆봅슬레이=강철썰매로 1500m의 내리막 회전 주로를 달려 소요 시간으로 순위를 매기는 경기. 2인승은 2회, 4인승은 4회 활주한 뒤 합계시간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4인승은 1924년 생모리츠 올림픽부터, 2인승은 32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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