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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장기 기증은 쓰러진 가정까지 일으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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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수술과 수술 사이 틈을 타 이 교수에게 혹시 장기 기증을 했느냐고 물었다. “이미 10년
전 이식센터 전 직원과 함께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김상선 기자]

고(故) 최요삼 선수가 모든 것을 주고 떠난 지 열흘 남짓 흘렀다. 여섯 명에게 새 생명을 안긴 그의 고귀한 희생은 장기 이식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이식 대기자가 2만 명을 넘지만 지난해 장기 기증 뇌사자는 148명뿐이었다. 기증 장기로 꺼져 가던 생명을 되찾거나 시력을 얻은 이가 676명. 기증만 따라 주면 더 많은 이에게 새 삶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간 이식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의 이승규(59) 교수를 만나 장기 기증과 이식 수술 이야기를 들었다. 이 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9일 간 이식 수술 집도 현장과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이승규 교수는 연구실에서도 녹색 수술복 차림이었다. 평일에 이 교수 팀은 하루 종일 수술을 한다.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을 맡는 그는 집도 틈틈이 연구실과 외래를 오가느라 수술복을 벗을 틈이 없단다. 마주 앉자마자 수술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 환자는 정말 잘됐어요. 원래 아들 간을 받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한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쉰둘의 간경화 말기 환자. 더는 버틸 힘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자신의 간을 떼어 주려 수술대에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새벽 4시에 기적처럼 장기 기증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새해 들어 9일째인 그날 벌써 아홉 번째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이 교수 팀이 집도한 간 이식 수술은 320건이나 됐다. 이 중 뇌사자의 간 이식은 34건뿐이고 나머지는 생체 간 이식 수술이었다. 이식 수술이 한 해 300건을 넘어선 것도 기록이지만, 대부분이 15시간 이상 걸리는 고난도의 생체 간 이식 수술이라는 점에 세계 외과학계가 주목했다. 기증자가 충분한 미국에서는 위험 부담이 큰 생체 이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교수 팀이 지난해 집도한 생체 간 이식 건수는 미국 전체 병원에서 한 것보다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인 그의 의술은 척박한 장기 기증 환경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고심의 결과였던 것이다.

1993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장기 기증자가 없어 한 달 동안 한 건도 이식 수술을 못 했다”고 안타까워했었다. 지금은 어떤지 물었다.

“그래도 조금씩 늘었어요. 94년 생체 간 이식을 시작했고, 99년엔 전체 이식 수술이 32건까지 늘었죠. 그런데 2000년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US)가 생기면서 확 줄었어요. 필요한 서류도 많고 절차가 까다로워져 그랬던 것 같은데, 최근 다시 늘고 있죠.”
 

이승규 교수(右)가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특히 최요삼 선수의 일이 있은 뒤 장기 기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새해 이 교수가 집도한 이식 수술 아홉 건 중 네 건이 뇌사자의 기증 덕에 이뤄졌다. 고맙지만 반짝 하고 말지 않을까 걱정이다. “94년에 탤런트 석광렬씨가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 기증을 했어요. 그뒤 기증자가 갑자기 늘었는데, 그 효과가 두세 달 정도 갔습니다. 최 선수 경우는 좀 더 고무적입니다. 높은 분들이 조문도 하고, 기증한 분의 명예를 높여 주는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마련된 것 같아요.”
 
생체 간 이식의 최고 권위자인 이 교수지만 건강한 사람까지 수술대에 올려야 하는 생체 이식보다 뇌사자 장기 이식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40%는 이식을 못 해요. 크기가 안 맞을 수도 있고, B형 간염이거나 지방간이어도 안 되니까요. 이럴 땐 뇌사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학생이 수술을 받는 것도 걱정이고요. 청소년기에 큰 수술을 받는 건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죠. ”
 
기억에 남는 수술을 물었더니 걸음마 시절을 떠올렸다. “첫 수술이 많이 생각나는데, 94년에 첫 소아 생체 이식을 했던 지원이…. 선천성 담도 폐쇄증으로 아버지 간을 받았어요. 많이 긴장했고 굉장히 정성을 쏟았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수술했는데 벌써 중학교 2학년이래요. ”
 
장기를 이식받으면 지속적인 외래 진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교수는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93년 수술받은 그의 세 번째 환자는 최장기 생존 기록으로 여전히 건강하다. 94년의 한 환자는 거부반응으로 두 번의 수술을 더 했고, 네 번째 간을 만나고서야 건강을 찾았다.

하지만 모두 이들 같을 수는 없었다. 이 교수의 수술 성공률은 96%다. ‘미국 간 이식의 메카’라는 피츠버그 대학병원이 80% 수준이니, 그의 수술은 완벽에 가깝다. 실패한 4%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지만 100%라는 숫자에 매달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2년 전쯤 5개월 동안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은 적이 있어요. ‘100%를 해 보자’고 생각했고, 인위적으로 하려면 할 수 있었죠. 중증 환자 수술을 안 하면 성공률을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회복기만 잘 넘기면 간은 정상 기능을 해요. 그러니 가능성이 10%만 돼도 해야죠. 환자를 골라서 수술하고 싶지 않아요. 위험이 커도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니까요.”
 
이런 이 교수도 젊어서는 개업해서 돈 많이 벌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스승의 권유에 따라 이식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단다. 그리고 한 생명은 물론 가정을 구하는 데서 보람을 얻었다. 간암이나 간경화는 8 대 2의 비율로 남성에게 많이 발생한다. 간을 이식받는 환자의 70%는 4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 한창 가정을 지탱해야 할 가장들이다.

“가장이 쓰러지면 가정이 엉망이 되잖아요. 이식을 해서 환자를 사회에 복귀시키고 가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기증자를 찾아서 낫게 해주고 싶어요.”
 
인터뷰는 그가 집도하는 간 이식 수술 현장으로 이어졌다. 이날 새벽 극적으로 간을 기증받은 간경화 환자의 수술이었다. 일반외과가 쓰는 커다란 수술실 안에 6개의 수술방이 있고, 방마다 이 교수 팀이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간암 수술을 마친 이 교수가 숨 돌릴 새도 없이 옆방으로 옮겨 이식 수술의 ‘메인’을 맡았다. 환자가 가슴을 열고 새 삶을 기다리는 옆 방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가 누워 있었다. 서른넷의 건강하던 그는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을 옮겨 갔고, 각막 둘과 신장 둘, 췌장, 간까지 그의 장기가 새 삶을 찾아 떼어졌다.

이 교수에게 살아 있는 장기를 적출할 때의 마음을 물었다. “외과 의사는 뇌사 판정에 관여할 수 없지만 중환자실에 가면 예정자 분들을 보잖아요. 참 안됐다 싶고… 안쓰럽고… 그게 참….” 말줄임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연연해서 감상에 빠지면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분들 덕에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죠…. 우리가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요.”
 
이 교수까지 다섯 명의 의료진이 환자의 병든 간을 떼기 위해 병상을 둘러쌌다. 30분쯤 지나 메말라 굳어 버린 환자의 간이 떼어졌다. 이 교수는 기증자의 간을 적출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뻥 뚫린 환자의 흉곽에 새 간을 자리 잡아 줬다.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혈관을 일일이 연결하는 ‘바느질’이 이어졌다. 처음 만나 악수할 때 두툼하게 느껴졌던 이 교수의 손이 날렵하게 한 땀 한 땀 혈관을 이어갔다. 곁에서 그를 돕는 간호사의 수술장갑을 보니 땀이 가득 차 있었다. 겉으론 조용히 진행되는 수술이지만 그 속에는 숨막히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증자의 장기는 이렇게 다른 이의 몸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고 있었다.

이승규 교수는

1994년 국내 최초로 어린이 대상 생체 간 이식, 97년 성인 대상 생체 간 이식 수술 성공. 99년 변형우엽절제술과 2000년 듀얼 간 이식을 세계 최초로 성공.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는 간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병원 관계자는 “이 교수는 세계 톱 클래스를 넘어 말 그대로 톱”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구로병원을 거쳐 89년부터 아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92년 국내에서 세 번째로 간 이식 수술을 실시한 이래 지금까지 1800여 건의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각국의 의사들이 그에게서 ‘한 수’ 배우기 위해 방문을 요청하고 있으며, 미국 ABC방송도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놓고 있다.
 
홍주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생체 간 이식 수술=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다. 뇌사자 장기 이식에 비해 시간·인력이 세 배 이상 들어가는 고난도 수술이다. 장기 기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간 이식의 대부분이 생체 이식이다.

◆변형우협절제술=간은 왼쪽(30%)과 오른쪽(70%)의 두 엽으로 나뉘어 있다. 통상 생체 이식은 왼쪽 엽을 떼지만 변형우엽절제술은 크기 등의 이유로 오른쪽을 이식한다. 이 때문에 간의 모양·구조, 혈관 등의 좌우가 모두 뒤바뀌어 수술의 설계 자체를 새로 해야 하는 초고난도 수술이다. 1999년 이승규 교수가 세계 최초로 시술했다.

◆듀얼 간 이식=생체 간 기증자의 간 크기가 너무 작아 이식이 불가능할 경우 또 다른 기증자를 찾아 2명이 환자 1명에게 간을 제공하는 수술 방법이다. 이승규 교수가 2000년 전 세계에서 처음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