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가 있는 와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호 35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 와인 지역으로는 키안티 클라시코에 해당하는 라다 인 키안티(Radda in Chianti) 마을은인구 100명이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유명한 와인들을 생산한다. 그중 독특한 라벨의 와인이 있다.

와이너리는 ‘몬테베르티네(Montevertine)’. 1960년대 초반 기계공이었던 세르조 마네티는 주말을 보낼 작정으로 이곳의 말 농장을 구입했고, 친구들과 마실 목적으로 2㏊ 정도의 포도밭을 개간했다. 초기에는 그야말로 몇천 병만 생산해 친구들과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세르조의 와인에 매료된 친구들이 와인 축제에 나가보라고 권했고, 세르조 역시 재미 삼아 자신의 와인을 일반인에게 소개하게 됐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되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본래 세르조는 양조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양조과정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화가인 친구로부터 와인 라벨을 제공받았다. 화가는 세르조의 와인 ‘레 페르골레 토르테(Le Pergole Torte)’의 라벨에 자신이 재해석한 모나리자의 모습을 그렸고, 매년 다른 형태의 모나리자를 제공하고 있다.

포도원 `몬테베르티네`마구간을 양조장으로 개조, 최고의 키안티 와인을 만들고 있는 포도원이다.

또한 세르조 자신은 와인을 만드는 틈틈이 본인이 다루던 기계들의 부속품을 용접해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와이너리 곳곳에 전시해 두었는데 마치 야외 예술 전시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세르조의 예술적 기질은 와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와인을 만드는 데 자연적인 방법을 고수했다. 예를 들어 발효 과정에서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없다. 와이너리가 400m의 산속에 있는 것을 활용해 낮에는 햇볕이 충만한 것을 이용하고 밤에는 자연적으로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굳이 인공 시스템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건은 포도가 생육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자연적인 산도의 감칠맛 나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도와준다. 페르골레 와인의 첫 빈티지는 1971년이다. 이 와인의 남다른 점은 단지 라벨에만 있지 않다. 와인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인 포도나무의 수령이 40년 이상 되어 깊은 맛을 내며, 토양에 석회질과 편암이 많아 미네랄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10년 이상 숙성시킨 후 마시면 좋고 그 이후 오랫동안도 저장이 가능한 힘 있는 와인이다.

와인은 매년 마실 때마다 오묘한 차이를 보여주는데 아마도 화가 친구는 이 때문에 71년 이후 매년 다른 모양의 모나리자를 그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세르조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그의 아들, 마르티노가 대를 이어 같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화가는 그 옛날의 약속을 매년 지키고 있다. 올해는 어떤 모나리자가 미소 지을지…. ‘레 페르골레 토르테’에는 이렇듯 우정과 예술,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시간이 함께 숙성돼 있다.


와인 전문가인 김혁씨는『김혁의 프랑스 와인 기행』『김혁의 프랑스 와인 명가를 찾아서』『김혁의 이탈리아 와인 기행』등을 출간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