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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배운 것 없지만 발전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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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노동당의 전술에 대한 ‘노인’(朴憲永 남노당 부위원장을 지칭)의 견해를 보낸다. 우리 생각은 이 제안을 승인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 전술은 다음과 같다. 미군정(美軍政)의 각종 조치를 시정 내지 폐지시켜야 하지만 미군정의 불필요한 반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너무 멀리 나가지 말아야 한다. 우익진영의 정치적 의도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그들 내부에서 프락치 활동을 강화한다.”

해방 직후인 1947년 4월 17일 남노당 지도부가 당시 북한을 통치하던 소군정(蘇軍政)에 보고한 내용이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李萬烈)가 최근 펴낸 ‘소련군정문서, 남조선 정세 보고서: 1946~1947’은 이같은 내용을 포함, 해방정국에서 활동하던 남한 내 좌익세력의 활동상과 그들의 전술·전략, 남노당과 소군정과의 관계 등을 생생히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들을 담고 있다. 이들 문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러시아연방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것으로 당시 남노당 지도부였던 박헌영·김삼룡(金三龍)·이주하(李舟河)·이승엽(李承燁) 등이 작성, 蘇25군의 로마넨코 민정사령관과 레베데프 정치사령관 등을 통해 구(舊)소련 연해주 군관구의 메레츠코프 사령관과 소군정의 최고실권자였던 스티코프 군사평의회 위원에게 보고한 것이다.

남노당이 소군정의 지시와 함께 자금지원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중앙일보가 1994년 12월 입수한 ‘레베데프 비망록’과 95년 5월 입수·공개한 ‘스티코프 비망록’ 등에서 이미 밝혀졌다.

이번에 공개된 ‘소련군정문서’는 두 비망록에서 밝혀진 사실 외에 당시 주요 정치 쟁점이 됐던 미소공동위원회, 좌익진영의 3당합당, 좌우합작운동, 입법의원 선거 등에 대한 소군정과 남노당의 대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문건이다.

특히 문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노당 지도부가 김일성(金日成)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점. 남노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46년 4월 27일 작성한 정보보고에서 “김일성은 비록 교육수준은 높지 않지만 빛나는 지성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의 지식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소군정에 보고했다.

반면 이 인사는 “무정(武亭)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상당히 가치있는 인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 그의 교육수준과 지식은 매우 낮다”며 “그는 전투경험은 풍부하지만 정치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남노당 지도부는 조직 운영의 애로점도 소군정에 솔직히 털어놨다. 47년 4월18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남노당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사회단체들은 매우 취약하다”며 “사회단체가 발전하지 않으면 당의 발전도 불가능하고 우리 당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남노당은 재정문제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우리는 당에 최소한의 물적인 수단들을 체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며 재정지원을 호소했다.

문서는 또 소군정이 당시 남한 내 우익진영의 동향도 예의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레베데프 정치사령관은 47년 4월 16일 “우익진영의 여러 정파들은 미소공동위원회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이승만(李承晩)은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지만 김구(金九)는 이에 반대하고 있으며 김규식(金奎植)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고 스티코프에게 보고했다.
이동현 기자leehid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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