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評傳 "申叔舟"낸 문학평론가 박덕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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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역사와 도덕은 무관한가.
역사,특히 인물사를 기록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치적업적과 도덕성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느냐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도덕성에 점수를 많이 주는 도학주의적 정서가 지배적이었다.그래서 모든 역사적 인물들은 「충신과 간신 」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사육신과 신숙주도 예외는 아니었다.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항거해 「독야청청(獨也靑靑)」을 외치며 죽어간 사육신은 충절의 상징으로 남았고 수양대군의 참모가 된 신숙주는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변하기 쉬운 것의 대명사가 됐다.
문학평론가 박덕규(37.朴德奎)씨가 「간신」으로 낙인 찍힌 신숙주의 권리회복을 표방한 평전 『申叔舟』를 펴내 화제다.「사람의 길,큰 사람의 길」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朴씨는 이 책에서신숙주를 현실정치가로서 재조명해 보이고 있다.
『신숙주는 정치.외교.국방.학문.문화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쌓은 유학자며 정치가였습니다.명분보다는 각 군주의 통치지향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그 이념의 실현에 앞장선 현실주의자였습니다.그의 업적들이 수양대군의 편에 섰다는 도의적인 이유때문에 부정돼서는 안되겠지요.』 『申叔舟』는 태종17년(1417년)에서 성종6년(1475년)에 이르는 59년동안의 신숙주 일대기를 『조선왕조실록』『연려실기술』『보한재집』등 다양한 사료들을 기초로 정리해 놓은 책.단순한 사료나열에 그치지 않고 간신으로 왜곡된 신숙 주의 이미지를 바로잡고 업적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러면서도 정사(正史)자료에 기록된 신숙주의 단점들을 실어 평전으로서의 균형을 갖추려 한점이 눈에 띈다. 신숙주는 조선왕조실록에 『세조를 섬김에는 승순(承順)만을 힘썼고,예종조에는 형정(刑政)이 공정함을 잃었는데 광구(匡救:악한일을 못하게 구원함)한 바가 없었으니 이것이 그의 단점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朴씨는 이 책에서 『송와잡기』에서 전하는 「신숙주가 성삼문등 동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왔다고 해서 부인 尹씨가목을 매달았다」는 이야기는 허위임을 밝히고 있다.신숙주의 부인尹씨는 「사육신사건」이 나기 2년전 병사하고 없었다.
朴씨는 문학평론가인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5백년전 인물의평전을 쓰게 된 것도 『흑백에 가까운 심경윤리가 위세를 떨쳐온지적풍토에 자극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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