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61. KBS 수상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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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00년 KBS 스튜디오에서 녹화하고 있는 필자. [사진작가 국수용씨 제공]

“회사에서 아주 충격적이었나 봐요. 앞으로는 황 선생님을 라디오에 출연시키지 말라고 난리던데요.” KBS의 한 라디오 PD가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나도 그냥 웃어넘겼다.

 KBS에서 ‘난리’가 난 것은 1982년. 내가 제1회 KBS 국악대상의 작곡 부문 수상을 거부한 때다. 하루는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온 내게 아내가 말을 전했다. “KBS에서 전화가 왔는데 상을 받는다고 그러데요.” 나는 기가 막혔다. “일년 열두 달 국악 방송은 하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웬 국악대상이야. 나는 그런 거 안 받아.” 이렇게 말한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전화가 왔다. 누구였는지 지금은 생각 나지 않지만 대뜸 “주민등록증 사본과 도장을 가지고 오세요”라는 게 아닌가.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는 그 상 안 받겠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1회부터 수상을 거부하겠다고 나서니 KBS가 당황했을 법도 하다. “임원이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다”고 KBS에 있는 내 동창생까지 동원해 설득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내 결심은 굳었다. 기억을 더듬어보건 데 그 해에 나는 KBS에서 한 번도 연주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국악 프로그램도 전혀 편성하지 않았을 때다. 방송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연주회를 열면 아무리 사람이 많이 와도 한계가 있지만 방송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국악을 듣는 사람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런 책임에 눈 감고 있던 방송사에서 갑자기 자기 회사의 업적 혹은 체면을 생각해 나보고 들러리를 서라는 것 같았다.

 나는 끝내 수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도 연말이면 시상하는 KBS 국악대상 프로그램의 역대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다. 새삼스럽게 내 이름을 빼라고 요란을 떨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공치사(功致辭)성 행사보다는 본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국악 프로그램을 늘리고 국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힘써야 한다. 물론 요즘은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24시간 국악을 방송하는 국악방송국도 생겼으며, KBS에서도 국악을 내보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대중의 기호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게 미디어라고 하지만 대중을 이끌어 선도하는 것 역시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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