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고베의 餘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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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효고(兵庫)縣 남부 지진 참사이후 세계 59개국이 일본에 구호를 자원했다.이 온정의 손길을 일본당국은 거의 외면했다.딱 잘라「노」도,그렇다고「예스」도 하지않았다.「끼니를 굶고도 이쑤시개를 무는 사무라이적 허세」로 자조(自嘲)하는 일본인도 있다.「일본은 경제적으로 세계 넘버 원이고 과학 선진국이다.가장 많은 원조를 주는 처지에 쌀과 담요를 받다니 웃긴다」는 식이다.자존심을 넘어선 일본의「오만」이다.
참사현장에서는 국가적 긍지보다 인명구조가 우선이다.한국등 20개국의 구호는 받아들였지만「억지로 고맙다」는 식이다.
주일(駐日)미군은 수색과 구조에 출동 채비를 갖추고 구호및 보급품 수송에 군수송기와 함정까지 대기시켰다.항공모함에 이재민2천명 수용까지 고려했다.그러나 일본이 받아들인 것은 담요.물.텐트의 세가지였다.
스위스의 수색견(犬)지원도 시기를 놓쳤다.
찾아낸 18명은 숨진 후였다.
남의 선의를 달가워하지 않는「섬나라 기질」에다「되로 받고 말(斗)로 뜯기는」악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계산때문이라는 악의(惡意)섞인 풀이도 있다.
『모든 결정 은 지방정부가 알아서 한다.자위대 동원도 군국주의적 인상때문에 자제했다』는 일본관료들의 해명에 바깥세계는 그저 어리둥절하다.
용의주도와 효율, 일사불란(一絲不亂)은 바깥에 비친 일본의 얼굴이다.효고縣남부지진은 이 일본의 이미지를 함께 흔들어 놓았다.세계의 안방에 비친 일본인의 생활상은 「경제대국」의 의미를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생활수준 향상이 없는 산업 일등국이 무슨 소용이냐』는 일본인들 스스로의 물음부터가 그렇다.
「지진의 세계 권위」 일본의 이미지도 상처를 입었다.고베(神戶)현장으로 달려간 세계의 지진전문가들은 일본의 공법(工法)이의외로 허술함에 놀라고 있다.일본이 자랑하는 한신(阪神)고가도로는 철심(鐵心)을 깐 콘크리트 기둥이 받친다.
이 철근의 유연성이 충격을 견딘다.그러나 충격으로 철이 심하게 늘어나거나 휘어질 경우 콘크리트가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다.
철심주위에 「스틸 재킷」을 씌우고 링이나 나선형장치를 달아 그 범위안에서 요동을 차단해야 한다.
이 재킷이 없 는 곳은 모두 나가떨어졌다.지붕이 무거운 전통가옥은 좌우 흔들림에 폭삭한다.바다 매립지의 유연한 퇴적토에 바탕을 둔 유연공법은 이번 항만지역 황폐화로 「매립왕국」일본의앞날에까지 불안을 가중시켰다.
고베의「여진」(餘震)은 일본의 「혼(魂)」을 흔들어「우리가 과연 누구냐」고 일본인들에게 되묻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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