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믿지?”-감성의 리더십 헤어디자이너 이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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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프랑스 칸. 영화배우 전도연은 칸 영화제에서 유력한 여우 주연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상식 날 아침까지 행사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없었다. 전도연은 10여 명의 스태프에게 말했다. “우리 기분 전환할 겸 근교에 나갈까요.” 전도연의 손을 붙잡은 것은 ‘이희헤어앤메이크업’ 이희 원장이었다. “도연아, 끝까지 기다려보자.” 알려진 대로 주최 측은 몇 시간 후 시상식 참석을 요청했고 전도연은 ‘칸의 여왕’ 자리에 올랐다. 영화사 관계자는 “칸에서 도연씨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원장뿐이었다”고 전했다.

 이희 원장은 ‘감성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의 리더십은 전도연·이영애·장진영·김현주 등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을 움직인다.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 출연한 김현주의 머리를 싹둑 자른 것도 ‘내 남자의 여자’ 김희애에게 파격적인 파마 머리를 권한 것도 그였다. 지난해 10월 이 원장이 헤어 제품 ‘드이희’를 내놓았을 때다. 이영애·김희애 등 ‘이희 군단’은 자발적으로 달려와 홍보 전단의 모델로 나섰다. CF 하나에 수억원씩 받는 배우들이지만 무료로 카메라 앞에 섰다. 전도연은 이 원장과 함께 인터뷰한다는 조건으로 패션 잡지에 화보 촬영까지 했다.

 이 원장은 머리카락을 만지기 전에 마음을 먼저 만지려고 노력한다. 언니처럼 배우들의 시시콜콜한 고민을 들어주고 힘이 되어준다. 때로는 진심 어린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일로 만났지만 ‘나는 네 편’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화나는 일은 같이 흥분하고 즐거운 일은 더 기뻐하죠.” 이렇게 쌓은 인간적인 신뢰는 리더십의 밑바탕이 된다. “머리카락을 확 자르라고 하면 여배우들은 대부분 싫어하죠. 저는 배우들의 눈을 보며 말합니다. ‘언니 믿지. 믿고 따라와.’” 상대를 설득하려면 빠른 판단력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100여 명의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1999년의 일이다. 빚을 내 문을 연 점포에 큰 불이 났다. 한밤중에 달려가 보니 벽은 시꺼멓게 탔고 물은 무릎까지 차 올라왔다. “억울해 주저앉고 싶었죠. 그런데 직원들이 우는 거예요.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이 원장은 바가지를 들고 와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은 퍼내고 그을음은 닦으면 돼. 우리 모두 하는 데까지 해보자.”

 직원들을 가르칠 때 마냥 웃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원장의 미용사 훈련은 혹독하다. 실수를 한 미용사는 보름 이상 같은 기술을 매일 연습해야 한다. 이 원장 역시 퇴근하지 않고 연습 과정을 지켜본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손님에게 사과하고 오라”며 직원을 밖으로 쫓아낸 적도 있다. 대신 직원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모두 전수해준다. “직원들은 함께 발전하는 파트너입니다. 저한테 배울 것이 있어야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겠죠. 이건 비밀인데요. 요즘도 직원들 몰래 일주일에 한 번씩 가발로 연습합니다.”

 이 원장은 리더란 모든 것을 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술을 담은 책을 쓸 계획이다. “업무 비밀을 다 밝혀도 되냐고요? 저를 믿고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인걸요.” 웃음을 가득 담은 그의 얼굴은 따뜻한 언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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