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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미스트, 스티븐 킹 원작소설 공포영화로 거듭 태어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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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 원인이 외계에서 온 것이든, 아니면 인간의 탐욕이든 초유의 재난이 닥친다.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재난의 정체를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강구하는 사이, 가족애로 똘똘 뭉친 우리의 주인공은 생존을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타고난 용기로, 혹은 현명한 판단력으로 주인공은 살아남는 법을 제대로 선택하고, 처참한 상처 끝에 해피 엔딩을 맞는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전형성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면, ‘미스트’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영화다. 정체불명의 재난에 맞닥뜨린 인간들의 반응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그려낸다. 간만에 찾아온 빼어난 공포영화다. 초현실적인 재난을 소재로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의 감각을 자극한다.
 
영화 제목이 뜻하는 대로, 공포의 시발점은 안개다. 한적한 호숫가 마을에 강력한 비바람이 지나고 난 뒤, 마치 연기를 살포한 듯 자욱한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집을 수리하랴, 생필품을 구입하랴 사람들이 몰려든 대형마트의 통유리창 바깥도 삽시간에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피를 흘리며 마트로 뛰어들어온 어느 노인이 “안개 속에 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안개 속에 감춰진 기이한 생명체들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고, 마트라는 일상의 공간은 점차 공포에 갇힌 밀실로 변해 간다.

아들과 함께 장을 보러 온 상업미술가 데이비드(토머스 제인)를 주인공으로,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를 단시간에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데이비드는 마트 바깥에 있는 괴생명체의 실체를 맨 처음 눈치 채는데, 그의 목격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부터 뜻밖이다. 서로에 대한 선입견으로 요긴한 정보를 무시하거나, 이 초현실적 재난 자체를 아예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동네에서 광신도로 소문난 카모디(마샤 게이 하든) 같은 여자가 끊임없이 ‘심판의 날’을 떠들어댄다. 위기 속에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건만, 마트 안은 혼돈의 아수라장이 돼 간다. 한밤중에 벌어진 괴생명체의 공격을 겪은 뒤, 사람들의 광기와 비이성적 분위기가 심화된다. 재난에 대처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이도 나온다. 데이비드는 몇몇 사람과 뜻을 모아 아들을 데리고 마트를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원작은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안개’다. 이미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에서 스티븐 킹과 제대로 통하는 연출력을 보여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이번에도 원작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다. 인간의 추한 면을 부끄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끄집어내는 스티븐 킹의 장기가 스크린에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경제적인 연출력이다. 영화 속에는 끔찍하게 생긴 거대한 곤충이나 선사시대 익룡을 닮은 여러 괴생명체가 나오는데, 자욱한 안개에 가려져 있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만 효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괴생명체의 살육도 살육이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이 보는 이의 진을 빼놓을 만큼 정신적 피로감을 안겨 준다. 지친 관객에게 소설과 달라진 영화의 결말은 극도의 허탈감을 안겨 주는 마무리 일격을 가한다. 원작소설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열린 결말을 택했는데, 영화의 결말은 그와 달리 한결 참혹한 절망이다.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후남 기자

주목!이장면안개가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안개는 이모저모 뛰어난 장치다. 특히 괴생명체의 전모가 드러나기 전까지, 영화의 전반부는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이나 괴물의 촉수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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