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경마이야기>경마는 혈통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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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사회적으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말을 생산.육성하는 과정에서도 이 잔인성은 잘 나타난다.
암말이 계획하지 않은 수말과 교미를 했다면 예외없이 그 새끼에게 형벌을 내린다.
태어난 새끼가 숫놈이라면 즉시 거세수술을 실시,수컷으로 행세하지 못하게 하고 암말이면 생식기를 봉합해서 암말로서의 생명을끊어 버린다.
어미가 저지른 불륜의 책임을 새끼에게 전가시켜 응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다 좋은 혈통의 말을 생산하기 위한 계획생산의 원칙을 따르기 위한 것이며 계획없이 태어난 말은 잔인하게 도태시켜 말의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하자는데 그 뜻이 있다.
그래서 경마를 혈통게임이라고도 한다.사람도 명문 가정에서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듯말도 명문 혈통에서 명마가 탄생하게 마련이다. 경마장을 말의 후천적인 능력검정 장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경주를 통해 혈통에 따른 말의 능력을 시험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말을 사고 파는 시장에서는 공산품처럼 말값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얼마나 잘생겼느냐에 따라 값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혈통,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결정된다.
그래서 해외토픽란에 망아지 한마리가 몇억원을 호가했다는 기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수한 혈통의 가문에서 태어나 유명한 경마에서 우승한 수말의노후는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나이가 들어서도 하루 두세번씩 싱싱한 암말과 관계를 맺는 행운을 갖는다.
거기에다 주인은 암말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교부료(交付料)를 받는다. 그때문에 주인은 말이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신주모시듯 받든다.
***** 이번주부터 한국마사회 이시영(李始永.54)마필보건소장이 집필하는 "재미있는 경마 이야기"를 매주1회 연재합니다. 李씨는 경상대 수의학과와 서울대 보건대학원(보건학석사)을 졸업한뒤 지난 73년 한국마사회에 입사,승마훈련원장.심판부장등을 맡으면서 20여년동안 경마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90년부터 서울대 수의가대학 외래고수로 강단에도 서고있는 李씨는 풍부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말과 경마장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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