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별명은 ‘아우디’다. 네 번이나 결혼한 전력을 아우디 자동차의 엠블럼(동그라미 4개)에 빗댄 말이다. 그래도 그가 총리가 될 때 이혼 경력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슈뢰더 내각에선 외무장관이 네 번째 이혼한 지 두 달 만에 여대생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그래도 장관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혼외정사와 숨겨 놓은 아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문제와 관련된 소문으로 마음고생을 한 유력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인으로선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정치인들은 뇌물죄보다 사생활 문제가 더 무섭다고 말한다. 뇌물죄는 언젠가는 잊혀지거나 무죄가 될 수 있지만, 사생활 문제는 공소시효도 없기 때문이란다.
유럽이라고 정치인의 사생활을 전혀 생각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와의 차이는 그들에게 더 요구하는 게 다르다는 점인 것 같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시절, 한 장관이 동성연애자이고 밤마다 술집에서 이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그가 장관 직을 사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 블레어가 “나는 장관을 임명할 때 낮에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를 보고 결정한다. 밤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거리가 아니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사임설은 잠잠해졌다.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에겐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낮에 박수 받을 만하게 일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